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이 일 년이 한참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서 우리도 곧 마스크를 벗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자칫 변이종에 의한 새로운 팬데믹이 또 오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 존스홉킨스대(Johns Hopkins University)가 지난달 중순에 내놓은 통계를 보면 현재의 팬데믹으로 대략 전 세계 1억 7000만 명이 감염됐고 3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18년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독감(Spanish flu) 팬데믹 재앙에 비한다면 별것 아닌 듯 보인다. 당시와 비교해서 훨씬 발전한 교통에 의해 바이러스의 확산은 폭발적으로 빠르고 크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이 정도 수준으로 피해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백 년 전 감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 원인, 즉 폐렴에 대응하는 항생제가 개발되고 의료기술과 설비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망자는 1884명으로 매년 자연사망자 수(2019년의 약 30만명)의 1%가 채 되지 않는데 이는 국내 의료기술과 설비의 우수함 덕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원들이 비급여 진료를 수입 창출의 중요 방법으로 삼고 경쟁적으로 첨단 시설을 갖춘 덕분에 에크모 등 첨단 기기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역할을 한 것이 감염 제한의 핵심인 진단 기술의 발전이다.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보건당국과 국민 모두의 현명함과 인내 덕분에 우리는 크게 위험한 상황을 겪지 않고서 이제 백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들고 있다.

그래서 우리 과학계의 활약을 하나 이야기하고자 한다. 작년 초까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기업들이 매우 신뢰도가 높은 진단키트를 발빠르게 생산해 전 세계 코로나19 방역망의 최전선을 구축했다.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된 ‘핵산증폭에 의한 진단’ 기술은 극히 적은 양의 핵산을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의 많은 양으로 증폭해내는 것이다. 이 진단키트 개발 저변의 기술과 아이디어는 사실 유전공학을 하는 전문가들에게는 다소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로 쉽고 간단하다.

한 개의 핵산가닥을 채 2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두 개로, 또 이것들을 같은 시간에 네 개로 만드는 식의 작업을 반복해서 한 시간 만에 약 10억 개 가닥을 만들어 내는 PCR이라 불리는 기술이다. 처음 학계에 발표된 후 10년 만에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획기적이다. 이는 현대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1980년대에 처음 나온 기계는 이후 점차 좋아지고 저렴해져서 전 세계의 분자생물학 실험실에서 PCR 기계 한 대 갖고 있지 않은 실험실이 없다고 할 정도로 보편화돼 있어서 필자의 대학에서는 학부생들이 실험 실습에서 경험해 보는 기술이다.

필자의 제자 한 명이 코로나19 진단 기술을 상용화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제자는 대학원 졸업 후에 질병들에 대한 분자진단키트를 생산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인체에 감염해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를 PCR로 진단하는 키트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 이를 본 필자는 이미 자궁경부암 백신이 시판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메리트가 있다고 그 간단한 기술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냐?라고 비아냥 섞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는 필자의 짧은 생각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분자진단의 핵심은 실제로는 감염됐지만 마치 감염이 안 된 것처럼 나오는 위음성 (false negative), 그리고 반대로 감염되지 않았는데 감염된 것처럼 나오는 위양성(false positive)이 없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PCR 기술은 극도로 예민해 유사한 핵산이 시료에 아주 소량 존재하여도 양성으로 나올 수 있다. 또 반대로 1~2개의 바이러스 핵산조각이 존재하는 시료를 다루는 것이기에 조건을 조금만 잘못 잡아도 쉽게 음성이 나올 수 있다.

관건은 PCR 반응의 타겟이 되는 핵산을 정확히 인식해 그것에 들러붙어서 반응을 개시하는 프라이머라는 물질이다. 필자의 제자는 회사에 들어가서 당장 돈벌이는 많이 못했지만 좋은 프라이머를 디자인하는 연구를 해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가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작에서 곧바로 실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필자는 크게 깨달았다.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가지고 엄청나게 중요한 실용적인 결과를 내는 일이 손바닥 뒤집듯 단순한 생각의 전환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부터 이뤄진 적지 않은 연구비 투자 덕분에 아직 경험이 일천한 우리나라 연구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당한 수준의 기초기술을 갖추고 있음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덕분에 드러났다.

최근 나온 ‘백신제조 허브화’와 같은 뉴스를 통해서 국제적 경쟁력이 확인되고 있지 않나. 기초과학자들은 속성상 아래로 깊이 파고드는 연구를 한다. 하지만 때때로 중요한 발명품들은 모두 기초적 발견의 실용화를 통해서 이뤄졌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스스로 일깨울 필요가 있다.

실용화만을 앞세워서는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질 수 없지만 최소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기 전 실용화 가능성에 대해서 한 차례 고민하는 일은 해야지 않겠는가. 이런 고민에는 생각의 전환이 수반돼야 하는데 이는 지식과 생각의 융복합적 교류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이제 대학은 학생 교육의 융복합만이 아니라 교수들 연구의 융복합을 의한 역량 제고도 고민해야 하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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