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도 소재 복수 국립대를 1개로 통합하는 '1도1국립대', 학령인구 감소 시대 대응책으로 떠올라
강원대-강릉원주대 구성원 의견 수렴 속도
전문가 "단순 건축비 지원 수준에 그쳐선 안돼… 통큰 재정지원 필요"

1도 1국립대 원칙 적용을 추진 중인 강원대(왼쪽)와 강릉원주대.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1도 1국립대 원칙 적용을 추진 중인 강원대(왼쪽)와 강릉원주대.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극심한 지역불균형과 학령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지역 국립대학간 통합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통합이 단순히 두 대학이 합치는 데서 그치지 않도록 정부의 통큰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교육계에 따르면 강원 지역 국립대인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강원도 국립대학의 지속 가능한 상생·발전모델 개발 연구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1도 1국립대 원칙 적용을 위해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1도 1국립대는 한 개의 도에 소재한 복수의 국립대를 각 캠퍼스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한 채 1개의 국립대로 통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간판 아래 춘천과 강릉, 원주, 삼척에 캠퍼스를 둔 형태로 운영하자는 내용으로 미국의 주립대와 유사한 방식이다.

■강원대-강릉원주대, ‘1도 1국립대’ 로드맵 마련 박차 =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1도 1국립대 원칙 적용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두 대학은 지난 2월 ‘강원도 1도 1국립대학 캠퍼스별 특성화 추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강원권 1도 1국립대학 추진을 위한 협력 △캠퍼스별 특성화 추진을 위한 플랫폼 구축 △지역 산업 및 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학협력 체계 구축 등이 포함됐다. 

당시 두 대학은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공유·협력사업의 효율적 추진과 실무적 지원방안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헌영 강원대 총장은 협약을 통해 “춘천, 강릉, 원주, 삼척 4개 캠퍼스를 특성화해 경쟁력을 더욱 키우고 자원 공유와 교류를 통해 양 대학의 강점과 역량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두 대학은 이미 2017년부터 업무협약을 통해 ‘연합대학 체제’를 구축해왔다.

이달 들어서면서 두 대학은 통합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먼저 강원대가 강원권 국립대 통합을 추진하면서 진행한 ‘강원도 국립대학의 지속 가능한 상생·발전모델 개발 연구용역’ 결과 보고회를 15일 온라인으로 개최하고 학생들에게 내용을 공유했다. 보고서에서는 통합을 통해 신입생 감소 폭이 줄어들고 대학 인프라 강화와 1000여명의 신규 고용, 경제적 파급효과 1000억여 원을 예측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열에너지와 의료, 수소와 해양바이오 등 캠퍼스별 전략산업 육성 방안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대 관계자는 16일 “현재 보고서를 토대로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라며 “구성원 의견 수렴 후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강릉원주대도 통합에 대한 설명회를 준비 중이다. 조재현 강릉원주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학교 측의 설명회를 듣고 나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해놨다”고 설명했다. 

■‘1도 1국립대’, 캠퍼스 특성화 통해 지역 불균형 대처하기 위한 고육지책 =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1도 1국립대 원칙 적용에 나선 배경에는 수도권 일극 체제로 대표되는 지역 불균형이 자리한다.

송영훈 강원대 기획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1도 1국립대 원칙 적용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특히 강원도는 산업 기반이 약하고 여러 정부사업이나 재정지원이 열악한 상황”이라며 “국립대인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지자체와 함께 두 대학이 가진 자원을 공유해 지역혁신을 이루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성범 강릉원주대 기획처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최 기획처장은 “지역 불균형과 학령인구 감소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인구가 감소하면 결국 입학 정원을 축소해야 하고 지역 대학 위기로 연결된다. 두 대학이 통합을 하되 지역별 특성화를 통해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면 더 좋은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대입에서 전체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91.4%로 미충원 인원은 4만 586명이었다. 이 가운데 비수도권 대학의 미달 인원은 3만 458명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강원대가 내부 구성원들에게 공개한 ‘강원도 국립대학의 지속 가능한 상생·발전모델 개발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학령인구 급감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학령인구 급감은 강원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는 2024년까지 가파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2024년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게 고착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양 대학의 물적·인적 인프라를 통합하는 방식의 상생발전 모델이 즉시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1도 1국립대’,  대학 평준화 아닌 특성화로 지역 발전 기여 각 대학을 평준화하는 게 아니라 특성을 살리는 1도 1국립대의 취지가 실현되면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송영훈 강원대 기획처장은 “강원도는 춘천과 원주, 강릉, 삼척이 거점도시인데 이들 도시를 기반으로 국립대의 역량을 모으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국립대는 기초 학문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으로 특성화하고 사립대는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특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는 교육계에서 오랫동안 논의된 권역별 대학통합네트워크와도 궤를 같이 한다. 지난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최한 ‘대학서열 해소’ 포럼에서 해당 의제를 제시한 김명연 상지대 법학과 교수는 “대학 평준화가 아니라 대학을 특성화 또는 다양화하는 절차를 거쳐서 대학이 발전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권역별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정의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거점국립대학은 서울대처럼 기초학문·기초과학·기초응용기술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사립대학들은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특화한다. 김 교수는 이를 통해 △범정부 차원의 대학통합네트워크 추진체계 구축 △수도권 학생의 지역대학 진학 촉진 △위기대학 폐교정책에 대한 대안 제시 △권역별 연합대학의 특성화·다양화 촉진 △지방대학육성법 등 교육관련 법령의 법제 정비 최소화 △기획재정부의 타당성 심사 및 예산확보의 용이성 등의 기대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전 총장)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1도 1국립대에서 나아가 ‘통합광역자치단체’ 개념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 광주와 전남을 통합한다고 하면 예를 들어 광주전남에 있는 국립대를 전라남도대학교라고 명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각 캠퍼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특성화를 할지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1+1에 머물지 않으려면 정부 통큰 재정지원 필요” = 전문가들은 1도 1국립대 원칙이 단순히 1+1에서 머물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황홍규 전 대교협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재정투자 없이 명목상 합치기만 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올라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황 전 사무총장은 “정부에서는 두 대학이 통합할 때 지원을 한다고는 하는데 단순히 건물 건축비 수준의 일시적 지원에 그친다”며 “연 5000억 원의 운영지원비를 받는 서울대 수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성범 강릉원주대 기획처장도 “경상국립대가 올해 3월 출범하면서 건물 하나 짓는 수준의 재정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통합을 하게 되면 학사구조 개편이나 캠퍼스 이동 등 경비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운영상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전 총장)도 궤를 같이 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지원하지 않고서 통합은 어렵다”며 “두 대학이 통합하는 과정에서 LMS 구축 등 경비가 많이 드는 현실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지원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학의 특성화 노력에 대한 주문도 나왔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는 지난 1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초국가적 협력이 강조되는 시대 정신을 고려할 때 단순한 통폐합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각 대학의 특성을 살려서 연계하는 식의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반 교수는 지난달 28일 본지가 주최한 프레지던트 서밋 4차 콘퍼런스에서 대학들이 각자의 법인과 경영 방식을 존속하되 필요한 부분에서 함께 인력과 자원을 모으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공유성장형 대학 연합 체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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