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거리 극복한 MR강의실…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대학 만들 것”
전자정보가 인쇄정보 대체한 시대, 도서관 역할 변화 “놀고 쉬고 토론하는 도서관”
메타버스 기술 도입과 전용 인프라 구축에 재정 투입 예상
총장단 “재정지원있어야”… 디지털 혁신공유대학 재정에서 예산 마련 제안
김무환 총장 “대학 공통 교과목용 콘텐츠 교육부가 주도해 개발‧지원해야”… “대학 간 협력 필요”

김욱성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의 브리핑으로 MR 강의실 소개와 시연을 해보고 있는 총장단. (사진= 한명섭 기자)
김욱성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의 브리핑으로 MR 강의실 소개와 시연을 해보고 있는 총장단. (사진= 한명섭 기자)

[포항=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도전에 대한 흥분과 고민이 교차하는 가운데 총장들의 눈은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반짝였다. ‘대학’이라는 고정관념의 벽, 가상과 현실의 벽을 모두 깨부순 포항공과대학교(이하 포스텍)의 도전 앞에서 미래 대학의 초기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24일 오후 전국 14개 대학의 총장과 보직자, 관계자 등 총 27명이 포스텍을 찾았다. 포스텍이 선도적으로 교육에 메타버스를 적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실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15일 본지 주최 ‘2021 서밋 2차 콘퍼런스’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한 포스텍의 교육 혁신 사례 발표를 들은 2021 서밋 총장단이 대학 방문을 제안하고 김무환 포스텍 총장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며 탐방이 전격 성사됐다.

이날 총장단은 △박태준학술정보관(도서관) △체인지업 그라운드 △LG 연구동(MR 강의실)을 둘러보며 포스텍의 교육 혁신 사례를 연구했다.

총장단이 포스텍 MR강의실에서 수업 시연을 듣고 있다. (사진= 한명섭 기자)
총장단이 포스텍 MR강의실에서 수업 시연을 듣고 있다. (사진= 한명섭 기자)

■ 전통 강의실의 한계를 뛰어넘은 ‘MR 강의실’과 원격 현장 강의 = 총장단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MR(Mixed Reality) 강의실이었다. 물리적 강의실 위에 표현된 가상 강의실에서는 아무리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도 가능했고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포스텍 LG 연구동에 마련된 MR강의실은 이름 그대로 VR(가상현실)기술과 AR(증강현실)기술을 활용한 강의 공간이다. 얼핏 보면 강의실 공간 자체는 일반 계단식 강의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VR과 AR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학생은 가상공간에서 아바타의 모습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최대 50명까지 동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김욱성 교수의 설명이다.

총장단이 강의실에 모이자 앞선 서밋에서 포스텍의 사례를 발표했던 김욱성 교수가 학생과 함께 MR 강의 시연에 나섰다. 학생이 홀로렌즈를 통해 보고 있는 VR 화면이 스크린에 띄워졌다. 그곳에는 의약학 분야 실습을 위한 AR 공간이 나타났다. 실제 수술실과 같은 수술대와 수술 장비가 갖춰진 공간이었다. 수술대 위에는 해부 실습도 할 수 있도록 사람이 누워있었다. 홀로렌즈를 착용한 채 시선을 돌리면 가상현실 속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어진 수업 시연에서는 다른 실험실에 있는 학생과 MR강의실에 있는 조교가 소통하며 실험 실습을 진행하는 상황이 재연됐다. 조교와 학생이 화면을 공유하며 동시에 원하는 이미지를 화면에 띄우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화면에 부품이 나타나자 조교는 어느 부분에 선을 연결해야 하는지 표시했고 학생은 어렵지 않게 해당 부분에 선을 연결했다. 서로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메타버스에서 만나 조교가 학생의 시선에서 어려운 부분을 도와줄 수 있었다.

김욱성 교수는 “일반 강의실에서 VR로 화면을 보면 오히려 화면이 더 멀어져 잘 보이지 않는다. MR교육에 최적화된 전용 강의실이 필요한 이유다”며 “이를 통해 지금은 포항에 있는 대학이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대학을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체인지업 그라운드 내에 있는 메이커스페이스에서는 어렵지 않은 기술로 이미 원격 이원 강의를 실현하고 있었다. 실습 수업에서는 장비가 있기에 일반 이론 대면수업과 달리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그렇다보니 교수자와 학습자간 소통이 쉽지 않다. 그러나 포스텍은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교수자가 학생이 실습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업 효과를 올렸다. 이곳에도 역시 VR 기기를 갖추고 있어 뇌구조와 같은 난해한 시각적 개념을 3D 이미지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포스텍 MR강의실에서는 VR과 AR기술을 활용해 가상공간에 의약학 실험실을 만들고  그곳에서 학생들이 실험과 실습을 할 수 있다. 죄측 스크린에 VR장비를 통해 학생이 보고 있는 증강현실 속 실험실 모습이 띄워져 있다. 이를 본 서밋 총장단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기록하고 있다. (사진 = 허지은 기자)
포스텍 MR강의실에서는 VR과 AR기술을 활용해 가상공간에 의약학 실험실을 만들고 그곳에서 학생들이 실험과 실습을 할 수 있다. 죄측 스크린에 VR장비를 통해 학생이 보고 있는 증강현실 속 실험실 모습이 띄워져 있다. 이를 본 서밋 총장단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기록하고 있다. (사진 = 허지은 기자)

직접 MR 강의를 체험해본 총장들도 포스텍과 같이 메타버스를 교육에 적용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전호환 동명대 총장은 “간호학과 해부실습수업의 경우 시신을 구하기 쉽지 않아 어려움이 있는데 메타버스 기술을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덕성 우송대 총장 역시 “보건의료분야 수업에 기술을 적용하면 2차원으로 배웠던 것들을 3차원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하운 동양대 총장은 “공학 수업에는 뉴럴신경 구조 등 복잡한 개념이 많은데 메타버스 기술로 어려운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수업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VR‧AR‧MR 기술을 교육과정에 시범적으로 도입할 계획을 준비 중인 대학들에게 포스텍 사례는 새로운 자극제가 됐다. 장세원 단국대 교학부총장은 “많은 학생들이 신기술을 접목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비교과 수업에서부터 적용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포스텍을 비롯해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며 우리 대학 나름대로의 메타버스 전략을 세워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희학 목원대 교학부총장은 “이번 탐방으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메타버스를 상담에 적용하는 방안도 소개됐다. 김욱성 교수는 “자살 충동이나 우울증이 심한 학생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며 강의나 상담을 받기 어렵다. 메타버스에서는 아바타의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지 않고 상담할 수 있다. 현재 이를 도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김중헌 고려대 교수학습개발원장은 대학의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 상담분야에서 메타버스의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메타버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익명성이다. 고려대도 메타버스를 여러 분야에서 도입하고 있지만 이것을 수업에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강의에 익명성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학생 상담이야 말로 익명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상담에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텍 도서관은 장서가 있었던 자리에 안마의자와 캡슐 침대, 운동시설, 영상 콘텐츠 제작실 등을 설치했다. (사진= 허지은 기자)
포스텍 도서관은 장서가 있었던 자리에 안마의자와 캡슐 침대, 운동시설, 영상 콘텐츠 제작실 등을 설치했다. (사진= 허지은 기자)

■ 지식의 전자정보화로 새로운 공간 확보… 뛰어놀고 토론하는 도서관 = 포스텍의 중앙 도서관인 박태준학술정보관에서는 예상 밖의 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장서가 있었던 자리에 안마의자와 캡슐 침대, 창의성을 자극하는 각종 시설과 영상 콘텐츠 제작실이 자리해 있었다. 기술의 변화는 학생의 학습 패턴을 바꿔놨고 물리적 대학 인프라의 역할을 바꿔놨다.

한지연 포스텍 학술정보팀장은 “도서관을 리노베이션하면서 장서 10만 권을 폐기했다. 소장도서 중 인쇄도서를 줄이고 전자도서를 늘린 것이다. 장서가 있었던 공간은 학생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변화하는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패턴에 따라 도서관의 역할도 변화해야 한다. 이제 대학 도서관은 토론과 협력을 위한 공간이자 학생들의 쉼터, 놀이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미 삼육대 교육혁신단장은 “우리 대학 도서관도 장서를 빼고 학생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학교에 와서 재미있게 지내며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오래 머물수록 무엇인가 더 만들어 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서민원 우송대 교육특임부총장은 “포스텍은 공대임에도 오히려 교육 시설이 감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학생 중심으로 설계한 점이 인상 깊다”고 전했다.

포스텍 체인지업그라운드를 둘러보고 있는 총장단. (사진 = 한명섭 기자)
포스텍 체인지업그라운드를 둘러보고 있는 총장단. (사진 = 한명섭 기자)

■ “멀티버시티, 글로벌화‧공유대학 실현할 것… 문제는 재정 확보” = “대학 생태계가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에 뒤쳐질 것이 두렵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대학의 체질을 빠르게 바꿔야 한다.”(서진택 동서대 특성화지원센터장)

이날 포스텍을 방문한 대학 관계자들의 마음은 ‘절박함’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메타버스가 크게 주목을 받고 있고 대학들도 비대면 수업 체계가 자리 잡을 것이라 예측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메타버스를 도입한 포스텍의 존재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 변화의 경주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수많은 질문을 공유할 동행자인 것이다. 이날 총장단은 포스텍은 메타버스 교육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우리 대학의 교육 콘텐츠는 어떻게 바꿔야 하나, 신입생 전원에게 VR 기기를 지급할 정도로 재원을 투자한 배경에는 어떤 전략이 있을까 그리고 이처럼 많은 투자를 해서라도 메타버스 교육을 실현할만큼 큰 가치가 있는가 등의 많은 질문을 안고 포스텍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고민과 탐방의 결과 총장단은 메타버스 교육의 효과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분명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 공감대가 모인 것이다.

오덕성 우송대 총장은 한발 더 나아가 메타버스가 대학의 글로벌화를 가져오고 공유대학을 실현할 효과적인 도구라고 판단했다. 그는 “메타버스 캠퍼스, ‘메타버시티’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면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오게 만들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을 전 세계에 보낼 수도 있다”며 “그동안 대학들이 ‘공유대학’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메타버스를 통해 서로 자원을 자연스레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입학정원이 320명 수준이고 공학계열 특성화 대학인 포스텍과 달리 일반 종합대학의 입학정원은 포스텍의 편제정원 수준과 비슷한데다 전공별로 교육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메타버스를 도입하려면 포스텍의 몇 배의 기기를 갖춰야 하고 메타버스를 적용한 교육 콘텐츠 개발도 보다 복잡하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에는 ‘비용’ 문제가 직결돼있다. 교육 콘텐츠 개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우종 청운대 총장은 “사립대는 재정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메타버스라는 혁신적 개념을 대학에 도입할 수 있으려면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고 역설했다.

황선조 선문대 총장은 “현장실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메타버스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 본다. 하지만 교육 콘텐츠 제작은 많은 애로점이 있다. 콘텐츠를 외부에서 구입하려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고민을 밝혔다.

김남정 삼육대 부총장 역시 “메타버스를 수업에 도입하려고 해도 그에 맞는 영상을 제작하고 새로운 교육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재정 문제에 대한 고민이 나오자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사업’으로 대학의 메타버스 환경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는 정책 제언도 이뤄졌다. 오덕성 우송대 총장과 장세원 단국대 교학부총장이 이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디지털 신기술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사업인 만큼 메타버스 환경 구축에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지원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대학 공통 교육과정에는 교육부가 주도해 메타버스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대학마다 특성화돼 있는 교육도 있지만 모든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메타버스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지원하면 대학의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메타버스 교육 콘텐츠는 어느 한 대학이 나서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들이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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