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배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양 철학이 한국 철학계의 주류였던 1960년대에 철학을 전공해 동·서양 철학의 교섭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송영배(65)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오는 2월 정년 퇴임한다.

송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중국의 역사변동을 유교적 관료주의와 토지의 사유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분석해 세계 철학계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 독일 유학시절, 관념론으로만 알던 헤겔철학이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탄생한 걸 알게 된 뒤 반독재투쟁을 벌이기도 했던 송 교수는 철학이 사회와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퇴임 이후 연구실로 사용하기 위해 5년 전 부터 준비해 왔다는 경기도 양평 소재한 송 교수의 자택에서 그를 만나,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인문학 위기와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송 교수는 ‘인문학 위기’에 대해 ‘가치 철학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근대 시민사회 이후 목적론적인 세계관을 부정하고 사실관계만 다루는 자연과학적인 관점만 부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그는 “가치 배제적이며, 사실에 대한 증명이 굉장히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유용했고, 시민사회가 발전하는 근거가 됐다”며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 즉 가치의 문제는 과학적 실험을 할 수 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음악은 뭐냐’, ‘맛있는 음식은 뭐냐’, ‘예쁜 옷은 뭐냐’ 는 등의 물음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여서 자연과학적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없죠. 삶도 어렸을때 느끼는 삶과 젊을 때 느끼는 삶이 달라요.”

송 교수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게 보다 실체적인 위기”라면서 “인문학이 자연과학의 맹목성을 비판하고 보다 잘 살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때 다시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치 철학의 위기를 보여주는 한 예로 ‘바이오 에너지 산업’을 들었다.

“바이오 에너지가 첨단 산업으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어요. 자동차를 가진 사람, 석유 팔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죠. 전 세계 자동차 대수가 약 3억 5천만대인데 적어도 약 4억의 인구에게 바이오 에너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20억 인구에게는 이게 재앙이 됩니다.”

바이오 에너지 개발로 인해 세계 곡물가가 3배 이상 폭등한 때문에 결과적으로 바이오 에너지 산업이 4억 인구를 위해 20억 인구의 생존권을 빼앗는 결과가 됐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는 때문에 ‘바이오 에너지 산업’이 인간을 더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연구에 드는 비용에 관한 것이다.

“바이오 에너지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에 투자한다면 이 연구에 대한 가치를 계산해야 하죠. 그러나 이건 노래를 부르고 사는 것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인 것을 산술적으로 개산할 수 없다는 것과 같아요.”

인문학 연구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BK21사업 등 정부의 지원정책이 자연과학 방식으로 연구비를 신청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공기가 없으면 죽는데, 공기의 가치는 측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죠. 인문학적 가치를 자꾸만 계량화하려하면 할수록 더 죽이는 꼴이 된다”는 말로 대신 답했다.

“칸트가 46살에 순수이성비판을 썼는데, 이건 1~2년 안에 나오는게 아니에요. 그가 우리 정부로부터 평가받는다면 적어도 45세까지는 무능한 교수였던 셈이죠. 책이 나옴으로 해서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송 교수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망할 때까지 발전할 것’이라는 과학기술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엘빈토플러를 굉장히 실어한다는 그는 “과학기술의 방향은 이윤 추구인데, 행복한 사회를 가져온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며 “첨단 과학 기술이 세상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보다 질 높은 삶을 위해 과학기술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 역할을 인문학이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인문학적 가치보다 효율성과 실용성만을 따지는 정책 방향을 꼬집었다. 그는 “너무 근시안적이고, 실용적인 목적과 효율성만 따지고 있어 교육의 근본을 호도하고 있다”고 쓴소리 했다.

고교 등급제와 평준화, 본고사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 정책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교육의 수월성 차원에서 일부 대학에는 허여해주고, 국민들도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유권자 표를 의식해 교육정책을 내놓고 있다면서 “이는 심리적으로 국민으로 기만하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 송영배 교수 = 1944년 경기 수원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철도고에 입학했으나, 부패한 자유당 때문에 철도청 취직에 실패, 서울대 철학과(63학번)에 입학했다. 동양 철학자가 없던 당시 고려대 김경탁 교수가 서울대에 출강한 '중국 철학'을 들었고 동양 철학 공부를 위해 국립 대만대(석사)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박사) 유학했다. 독일에서 반독재 운동을 벌인 탓에 1982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으며, 한신대 교수를 거쳐 1988년부터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중국 허베이(河北)대학 출판부가 ‘문명과의 대화’를 주제로 세계 10대 석학의 저서를 번역 소개하는 시리즈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중국 사회과학출 판사가 2003년 그의 책 ‘중국사회사상사’를 번역해 발행했다. 지난 1990년 출판한 ‘제자백가의 사상’을 1~2년 사이에 재출간할 계획이다. 퇴임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선진 고전과목’ 강의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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