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에서 평교수로 “근현대사 가르칠 것”


“총장생활 4년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한성대에 부임한 지 28년째인데, 인생의 황금기를 모두 여기서 보냈습니다. 교수로 일한 것도 만족스런 데다 총장까지 했으니 더 바랄 게 없죠.”

이달 임기를 마치는 윤경로 한성대 총장은 지난 4년 동안의 총장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연임하라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아름답게 물러나기로 했다. 한성대 구성원들이 직접 뽑은 첫 총장이자 총장에서 평교수로 돌아가는 첫 총장이기도 한 윤 총장은 당장 다음 달부터 평교수로서 학생들과 만난다. 전공인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칠 예정이다.

“총장 자리는 명예직이에요. 사회적으로 대접도 받고요. 하지만 더 하겠다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고 그런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산에 올라가 기도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어요. 결국 평교수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죠.”

총장 생활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보람도 컸다. 특히 임기 중 한성대 진입로 확장 사업을 마무리 지은 것은 그의 가장 큰 공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을 때부터 수차례 만나 설득했고, 오세훈 시장을 두 번이나 한성대에 데려와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교가 같이 있어서 등교시간이면 진입로에 1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드나듭니다. 그런데 너무 좁아요. 오세훈 시장을 직접 데려와 ‘봐라, 60년 전 그대로라 얼마나 불편하냐’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결국 사업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사업비 130억원 중 20억원은 우리가 내고 나머지는 시에서 내기로 했습니다. 이달 안에 세입자 보상이 끝나면 다음 달부터 착공할 겁니다.”

이와 함께 대학 근처 1만 2600제곱미터 부지도 확보했다. 부지 확보 과정에서 이사회가 우려를 표하는 등 갈등이 있었지만 확고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저렴하게 부지를 확보했고 한성대의 미래를 위한 발판도 마련했다. 이런 결과에는 한성대의 발전에 대해 수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한성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 경쟁률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어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정원을 채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위기의식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성대와 같은 대학은 ‘자기언어’를 쓸 수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 총장이 말하는 ‘자기언어’는 대학만의 독특한 경쟁력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대학 고유의 분야를 키우라는 뜻이다.

“우선 틈새시장을 살펴 특화해야 합니다. 한성대가 다른 큰 대학처럼 로스쿨에 뛰어들고 경영대를 키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성대는 예술대와 공대가 강합니다. 그래서 ‘컬처 & 테크놀로지’를 축으로 삼았어요. 그리고 아시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자고 다짐했습니다. 치앙마이·우즈베키스탄 같은 곳에서 지도자로 활약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한성대의 할 일이라는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고 따뜻합니다. 헌신적이기도 하고요. 이런 강점을 살려 우리 학생을 세계로 보내 리더로 키우자는 거지요. 제가 총장 시절 해외로 많은 학생을 파견 보냈는데 다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려면 4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감이 없지 않다. 주변에서도 연임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역시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박수 칠 때 떠나자’는 생각이었고, 지금은 짐을 던 듯한 홀가분한 기분이다.

“학교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는 연임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총장 일에 좀 익숙하고 할 만 하니까 그만둘 시기가 왔더라고요. 그렇지만 과감히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은 제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독재자들을 보세요. 모두 제각각 명분이 있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죠. 그러다가 화를 입는 겁니다. 매너리즘에 빠질 가능성도 있고요. 연임하다 삐거덕거리면 그동안 성과도 묻혀 버릴 수 있죠.”

윤 총장은 총장직과 함께 친일인명사전 출판위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총장 임기가 끝나면 이 일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친일인명사전은 윤 총장의 역사학자로서의 역사관과 자부심이 서린 결과물이다. 그의 역사관은 얼마 전 출간한 저서 <한국 근현대사의 성찰과 고백>에서도 잘 드러난다.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도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말이 많죠.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한쪽에서 역사를 이야기해 왔어요. 이제 우리 스스로도 부끄러운 부분을 고백할 때가 됐다고 봐요. 우리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지 않으면 어떠한 대가가 뒤따르는지 보여 줘야 해요. 원래는 지난해 말 완료하려 했는데 대선이 있었어요. 친일인명사전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선 안 되겠다 싶어 연기를 했어요. 5월 이후쯤 해서 4000여 명의 친일인사 명단 정리 작업을 완료할 겁니다.”

이 일 외에 윤 총장은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상임이사도 맡고 있다. 해외 720만명의 재외동포에게 모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는 데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런 활동은 한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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