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시험 도입, “로스쿨 취지와 모순”

정부의 변호사시험법안이 지난 12일 본회의에서 부결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들은 변호사시험제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개강을 맞이하게 됐다. 교과과정 차질 우려 속에서도 법학계는 정부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시험과목 확대 등 그간 지적되어 온 문제점들이 정부 수정안에서 그대로 답습될 것을 대비, 대체입법을 추진하는 등 제대로 된 ‘변호사시험법’ 제정을 위해 적극 대응에 나섰다.

□ 법안 지연, 교육과정에 지장? = 대부분의 로스쿨 관계자들은 변호사시험법안 지연으로 학사과정이 큰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엄동섭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1학년 때는 기초법학 교육을 하기 때문에 변호사시험법과 큰 관련성이 없다”며 “좀 늦어지더라도 법안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창록 경북대 교수도 “로스쿨은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시험제도가 늦게 확정된다고 교육과정이 영향을 받진 않는다”며 “빨리 확정되면 좋겠지만 제대로 된 법이 만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재옥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커리큘럼은 이미 완비된 상태라 법안 지연으로 학사일정에 차질은 없다”면서도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혼란을 느껴 로스쿨 준비를 포기하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로스쿨 제도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 응시자격 제한 논란= 정부안이 부결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법학계로선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지난 12일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은 로스쿨 졸업생들에게만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준 것을 문제 삼았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방안을 앞으로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비시험 제도를 통해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주는 방안에 대해 로스쿨 관계자들은 로스쿨 도입 취지와 모순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창록 교수는 “로스쿨 도입은 시험을 통해서는 제대로 된 법조인을 선발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한 것”이라며 “예비시험을 도입하는 건 이런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총 입학정원 제한을 풀고 로스쿨 설치기준을 완화해 로스쿨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직장인을 위한 야간 로스쿨이나 통신 로스쿨을 만들면 응시자격 제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방의 한 로스쿨 입학생도 “로스쿨 안 나와도 변호사가 될 수 있으면 누가 비싼 학비 내고 로스쿨에 다니겠나”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는 “전문 고등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취지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법조인이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응시자격을 문제삼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들여 도입한 로스쿨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나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독자적 법안 준비 = 본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은 사항들이 정부 수정안에서 그대로 답습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이사장 김건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는 지난 9일 시험과목을 추가하고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에 법조계 인사의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변경된 법제사법위원회 수정안에 대해 반대성명을 냈지만, 본회의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정부안과는 다른 독자적인 법안을 마련해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섰다. 협의회 관계자는 “현재 초안은 나와있는 상태”라며 “총회 의결을 거친 후 법안에 공감하는 국회의원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회가 마련 중인 법안에는 ‘합격률 명시’, ‘시험과목 축소’,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 구성에 법학교수 비율 확대’등 그동안 협의회가 주장해 온 사항들이 대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법안의 수정방향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아무 것도 확정된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