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혁신·공유·대학 4개 키워드 바탕으로 ‘혁신’ 실현
교과목의 유연화·마이크로 디그리 과정 개설 등 변화
서울대의 책무는 수월성 아닌 공유…초연결 통해 협력
“서울대에서 학과, 전공 등 문화·제도의 벽 무너뜨리겠다”

김홍기 서울대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 단장.(사진= 한명섭 기자)
김홍기 서울대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장.(사진= 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생존을 위해 경쟁할 것인가, 협력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를 거치면서 시대적 키워드는 어느덧 ‘공유’로 귀결되고 있었다. 대학 역시 학령인구 감소 위기 속에서 견제하고 경쟁하기보다 하나의 연합체로 공유하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역시 경쟁보다는 공존을 택했다. 기후 위기, 팬데믹, 예측 불가한 전쟁이라는 변화무쌍함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디지털혁신공유대학 사업’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대학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기 위한 하나의 활로가 되고 있다. 서울대는 그 중에서도 빅데이터 분야의 주관대학으로 참여하고 있다. 디지털, 초연결, 빅데이터, AI, 수퍼셋... 나열할수록 어지러운 개념이 한 데 뒤엉켜 있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공유. 척박한 땅에 홀로 살아남는 대신 비옥한 영토를 개척하기 위한 연대의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서울대가 참여하는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달라.
“서울대는 빅데이터 분야에서 주관대학을 맡고 있다. 말 그대로 빅데이터, 혁신, 공유, 대학이라고 하는 4가지 키워드가 중심이다. 기존 빅데이터는 알고리즘과 방법론이 중심이 됐다. 그마저도 분야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사업단은 빅데이터를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다양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데이터 중심 사고방식, 데이터 중심 대학으로 바꾸는 것이 목적이다. 가상의 대학을 만들어 컴퓨터 공학, 국문과 맵핑하고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상대학이기 때문에 교무처와 협의해 문제를 해결했다. 혁신공유학부가 생겼고 기존의 전통적인 학과, 학부, 단과대 단위를 넘어선 가상의 공유조직이 강의개설의 주체가 될 수 있다.”

- 혁신을 강조했다. 어떤 혁신을 추구하고 있나.
“첫 번째 혁신은 교과목 운영과 개설의 신속함을 가능하게 한 유연함이다. 전통적인 3학점짜리 전공이 아니라 실무 중심의 미니 교과목을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다양함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 혁신은 진화 가능성이다. 모듈형 교과목을 만들어 하나의 모듈당 하나의 강의계획이 나오게 했다. 여기엔 문제은행,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들어간다. 모듈과 모듈 간의 결합도 가능해 교과목이 진화하도록 했다. 세 번째 혁신은 책이 아닌 미디어북의 제작이다. 각 교과목을 몇 개의 미디어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학생들은 미디어북을 통해 플립러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모듈형 교과목과 결합해 새로운 과목을 창출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를 보자는 수퍼셋(superset) 개념이다. 네 번째 혁신은 마이크로 디그리다. 기존의 전공 체계는 너무 무겁다는 약점이 있다. 전공을 이수했다고 해도 이를 이수한 학생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기 어렵다. 마이크로 디그리를 수료한 학생의 이력을 보면 역량과 관심 분야, 실무적인 능력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다섯 번째 혁신은 산학협력이다. KT, BC카드 등 기업과 협력해 데이터를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환류체계를 만들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혁신은 교육과 연구, 산업화가 함께 가는 진정한 의미의 산·학·연 결합이다. 교육과 연구, 산업이 연속선상에서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최근 창업 공모전을 통해 12개 팀을 뽑았는데 이를 좀 더 체계화 해 캠퍼스에서 빅데이터 관련 창업지원까지 해줄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사업단이 지난해 첫 발을 뗀 후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나.
“아직은 개념을 다지고 사업단이 운영되기 위해 준비작업하는 데만 몇 개월을 보냈다. 홍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올해 빅데이터 사업단 내 대학에서 1만9000여 명이 수강 신청을 했다. 신규 교과목도 많이 디자인했는데 서울대만 해도 7개의 마이크로 디그리가 설계됐다. 탄탄한 콘텐츠 개발 인력을 꾸렸고, 전문가와 영상 제작을 위한 도구를 갖춰 새로운 창업이나 데이터 수집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 정도만 해도 나름 큰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

- 빅데이터 분야에 서울대가 주관대학으로 선정됐는데 서울대가 가진 빅데이터 분야의 강점이 있나. 이 사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대에 교수 자원과 전문가가 많다는 강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엔 서울대의 강점만이 아니라 서울대가 가진 사회적 책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서울대의 강점을 내세우기보다 서울대가 가진 여러 가지 혜택을 함께 공유할 시점이라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할 때 나오는 개념이 ‘초연결’이다. 서로 다른 시스템과 영역이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은 대학의 장벽을 없애고 모든 것이 초연결된 시대다. 지금까지 서울대는 수월성을 중심으로 1등을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 공유를 통해 함께 진화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진화라는 것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을 추동삼아 함께 춤추는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협력하고 함께 공존하는 문화를 만들어 데이터를 중심으로 많은 학문이 융합되고, 여러 사람이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참여대학과 함께 컨소시엄을 이루는 구조인데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나. 빅데이터 분야 외 다른 사업단과의 참여도 이뤄지고 있나.
“사업단장들과 주기적 만남을 통해 협력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행사나 이벤트, 캠프, 창업 등 다양한 방법에서 협업 중이다. 현재 8개의 협의체가 있는데 사업단이 서로 다른 분야를 맡고 있지만 경쟁보다 역시 공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로의 방법론에 있어 공유하고 이를 협력 체제로 만들기 위해 평가시스템을 상호컨설팅 제도로 만들기도 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받아서 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하나의 문화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

서울대 내에서는 사업단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순위는 협력이다. 서울대 내 교양분야에서 AI분야와 관련한 여러 교과목을 개설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문과대, 사회대, 생활과학대 등의 시설, 단과대 지원을 사업단에서 돕고 있다. 특히 학내 데이터 중심 사고방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각 단과대가 데이터 중심의 사고와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고 있는 게 사업단의 역할이다. 서울대에서 학과, 전공 등의 벽을 무너뜨리는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러다보면 학문도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된다.”

-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MS 국제인증자격증 과정이나 KT, BC카드 등 기업과의 협약 추진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마이크로 디그리는 이제 막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기업과 협력하는 관계인데 그 전에 비교과과정을 운영해 MS, 아마존, 네이버 등이 참여해 5개 교과목을 설계했다. 두 달 과정이었는데 600명이 수강하면서 멘토 서비스를 진행했다. 빅데이터 사업단이 MS 국제인증자격증 준비를 위해 ‘MS 인공지능 교육과정’, ‘MS 빅데이터 교육과정’을 운영했고 응시자 전원이 ‘AI-900’에 합격했다. 이 과정이 정착되면 기업에서 서로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본다. 비록 마이크로 디그리 개념이 해외에서 들어오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좀 더 구체화되고 내용이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KT, BC카드와는 공식 MOU를 맺고 데이터 산업 확대를 위해 협업하기로 했다. KT 등 기업이 가진 활용 가치가 높은 데이터를 가공하다보면 여러 분석 시나리오가 나올 것이고, 많은 산업군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KT뿐 아니라 BC카드 등 데이터 간 연결이 되고, 서로 다른 생산자들의 정보가 또 다시 연결된다면 데이터의 재창조가 이뤄진다. 여러 사업단과 이 데이터를 공유할 계획이다. 그렇게 연결된 데이터를 통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 이슈, 주목받고 있는 ESG 분야 등에서도 다양한 산업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업단의 세 가지 모토가 인간, 지구, 미래를 위한 빅데이터다. 데이터를 통해 인간 중심의 지구를 살리는 미래를 위한 문제를 고민해보려고 한다.”

- 앞으로 사업단의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개념을 잡아가는 데 많은 고민을 했다면 이제는 구체화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 제도적, 문화적 난관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듈형 수업, 수퍼셋 등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다. 안 가본 길을 개척해야 하는 심정이다. 대학을 무너뜨리고 산업계, 기관과의 관계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도 과제다. 마이크로 디그리만 해도 실제 기업의 관점을 찾아내는 게 상당히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너무 따라가는 것에 급급하다. 이미 있는 컨셉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개념 디자인을 통해 선도적으로 트렌드를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국제화가 중요한데 우리의 콘텐츠를 알리고 그 분야에서 리더가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앞으로 가야할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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