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사회의 중심축이 교수 사회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교수 사회의 역할이 대학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수 사회가 어떤 기여와 역할을 하느냐가 대학 사회의 발전도, 정체도 나아가 퇴보도 결정할 수 있다. 대학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교수 사회의 변화와 개혁, 지성 회복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교수 사회의 지성 회복이 대학의 정체성 확립 및 신뢰회복을 위한 첩경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은 한 대학 졸업식에서 교수들이 제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졸업을 축하해주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자료 사진>
교수사회 불신 심화
지난해 고인이 된 소설가 박경리씨는 생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썩은 집단은 교수 사회”라며 교수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이어 그는 “사회를 반성하게 하고 이를 되짚어주는 것이 지식 사회다. (지식 사회의) 정점에 있는 것이 교수 사회인데 교수들이 자리보전이나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리씨의 발언은 교수 사회가 사회적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아닌 불신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본지가 매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의식조사에서도 ‘교수 사회’는 2007년의 경우 가장 신뢰하는 집단으로 꼽혔지만 지난해의 경우 시민단체·농민·대학생·문학인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추락했다.
‘철밥통’, ‘도덕 불감증’, ‘패거리 문화’ 등 교수 사회에 늘상 따라붙는 수식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교수 사회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더욱 깊어 가고 있다.
구설수 끊이질 않는 교수 사회
최근 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한 강연회에서 자신의 제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 감칠맛이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성희롱 구설수’에 올랐다. 당사자 학생이 박 총장 발언에 대해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박 총장의 발언은 중앙대 학생들의 공개사과 요구까지로 이어졌다.
교수 사회가 불신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사회의 지성을 대표해야 할 집단이면서도 구설수에 항상 휘말리기 때문이다. 박범훈 총장 역시 총장이기 전에 교수라는 점에서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수들의 성희롱 논란 차원에서 이번 발언이 해석되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과 총선을 계기로 불거진 폴리페서 논란은 교수 사회에 또 하나의 직격탄을 날렸다. 폴리페서 논란으로 교수들은 교수로서 본분보다는 정치적 야심이 우선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으며 서울대에서는 총선에 출마한 한 교수가 징계까지 받았다.
또한 정치권에 진출했던 교수들이 강단으로 복귀하려 하자 일부 대학의 경우 복귀 반대 움직임이 일어 교수들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다. 고려대의 경우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내각에 참여했던 곽승준·김병국 교수의 강단 복귀에 대해 정경대 학생들이 ‘학우들의 수업권 침해 때문’, ‘도덕성 문제’, ‘교수는 다른 자리를 좇아 나갔다가 금세 돌아올 수 있는 직책이 아니기 때문’ 등의 이유로 복귀를 반대하기도 했다.
지난해 교수들의 장관 및 청와대 수석 임용, 감신대·제주대 등 일부 대학의 총장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논문표절 및 논문 이중 게재 의혹도 교수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결국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는 제자 논문 표절 의혹 등으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교수 사회 지성 회복 나서야
교수 사회에 대한 사회의 비판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대학 사회에서 갖는 교수 사회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교수 사회 경쟁력=대학 경쟁력=국가 경쟁력’이란 등식이 가능하듯 ‘교수 사회 위기=대학 위기=국가 위기’라는 등식도 가능하다.
교수 사회 일각에서는 “사회 변화에 따라 교수 사회에도 시장논리가 침투하고 있다. 경쟁에 내몰린 교수 사회에 너무 엄격한 윤리적·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일부의 사례를 침소봉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등등의 하소연이 나오기도 하지만 교수 사회 전체가 공동의식을 갖고 지켜야 할 사회적·도덕적 책무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에 따라 교수 사회가 지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고진광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공동대표는 “대학은 지성을 가르치고 최고의 지성인을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더 정직해야 하고, 더 윤리적 잣대를 대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 것을 감수하라고 명예와 보수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홍덕률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교수 사회에 내재돼 있는 각종 부도덕과 나태·비리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스스로 청산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교수 사회는 학생이나 대학 직원은 물론 사회로부터 도덕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고 도덕적 신뢰 회복은 교수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교수 사회 지성 회복을 위한 제언
교수 사회의 지성 회복을 위한 교수 사회와 대학의 자성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홍덕률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수 사회의 위기와 극복방안'에 대해 △자기반성과 도덕적 리더십 회복 △정체성 확립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홍 교수는 “교수는 고도의 전문직이며 ‘자율’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갖는다. 태만과 비리를 척결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교수 사회의 자율적 장치와 의지에 의거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라며 교수 사회의 자기 반성을 우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홍 교수는 교수들의 자율협의체 기구인 교수협의회가 연구비 투명성 제고·교수채용 비리 척결·교수 사회 파벌 문화 청산·교수 윤리헌장 제정 및 실천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홍 교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도덕적 기준을 침범한 교수에 대한 퇴출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 교수와 대학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홍 교수는 “‘우리 사회는 대학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교수 본연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수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 등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홍 교수는 설립주체별·교육기간별·규모별로 대학 간 역할 분담과 4년제 대학과 전문대 간, 국립대와 사립대 간, 4년제 대학 내에서도 연구중심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 간 역할 분담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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