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즈의 살아있는 역사…양현종, 김선빈 등 유명 야구 선수들 스카우트 경험
신안산대 야구부 초대 감독으로 취임··· “안산 지역 야구 붐 일으키겠다”
초보 감독의 다짐, “선수들에게 공정한 기회 부여하고 소통하는 감독이 될 것”

강태원 신안산대 야구부 초대 감독 (사진=김한울 기자)
강태원 신안산대 야구부 초대 감독 (사진=김한울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한울 기자] 유난히 인터벌(투구 간격)이 길었던 해태 타이거즈 소속의 한 왼손투수가 있었다. 공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을 뺏는 것에 일가견이 있던 그 투수는 당시 감독인 김응용 감독의 눈에 들어 선발과 중간계투 자리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강태원 감독은 선동열, 이종범, 이순철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야구 선수들이 즐비했던 해태 타이거즈에서 5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팀의 전성기를 함께한 그는 은퇴 이후에도 기아 타이거즈의 스카우트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수많은 야구 유망주들을 상대해왔다.

이런 그가 얼마 전 신안산대의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스카우트 이후 △전주고 코치 △광주동성중 코치 △세한대 코치 등을 거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던 그가 감독 자리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부터 ‘대학 야구 U-리그’에 참여하기 위해 팀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17일 신안산대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었다.

■ 5번의 우승 경험을 가진 ‘포커페이스’, 투수 강태원 = 강태원 감독은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를 선도하던 해태 타이거즈에서 1989년 투수로 데뷔했다. 데뷔 해부터 우승을 차지한 소속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이었다. 그는 “선배들처럼 빠른 공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며 “평범한 구속으로도 프로에서 생존하기 위해 타자에게 내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투구 간격을 변칙적으로 가져가 타자들의 혼란을 유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당시로서는 유난히 긴 투구 간격으로 그가 공을 던지는 경기가 끝나면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만의 타이밍에 완벽한 공을 던지고 싶어서 포수가 내는 사인을 많이 거절했다. 포수가 낸 사인에 의구심 없이 던지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달랐다. 당시로서는 당돌한 행동으로 비춰졌다. 그래서인지 선배들이 빨리 던지라고 눈치를 많이 주기도 했다”며 웃어보였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 스타일로 인기 팀 해태 타이거즈에서 오랫동안 투수의 한 축을 맡을 수 있었던 그는 5번의 우승을 경험할 정도로 성공적인 선수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그는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1997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선발투수였던 ‘싸움닭’ 조계현에 이어 5회 2사에 등판해 8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해 승리를 챙긴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를 못 밟고 은퇴하는 선수가 태반이다. 운이 좋게도 한국시리즈에 올라 승리 투수가 됐다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좋은 동료들과 팀, 코칭 스태프를 만나 행복한 선수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 스카우트 16년, 야구 꿈나무들의 성장을 바라보다 =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은퇴를 앞둔 그에게 소속팀의 투수 코치였던 이상윤 코치가 팀의 신인선수를 선발하는 스카우트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다. 야구를 놓을 수 없었던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은퇴 이후 야구를 그만 둘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놓으려 하니 놓아지지 않았다. 미련이 남을 때쯤 코치의 스카우트 제의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2002년부터 2009년까지 KIA 타이거즈의 스카우트를 맡은 그는 김선빈, 양현종 등 현재 프로야구를 이끌고 있는 스타 선수를 발굴해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스카우트 시절 김선빈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구단 수뇌부를 설득했던 때가 가장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김선빈 선수가 키가 작아 야구를 잘하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단지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타격 △수비 △주루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 구단 수뇌부에게 그 선수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그 설득으로 현재 KIA 타이거즈의 김선빈이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함을 느낀다.”

소속팀의 스카우트에 이어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의 스카우트까지 맡으면서 10년 넘게 야구 유망주들의 옥석을 가려낸 그는 ‘눈높이를 낮추자’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처음 스카우트를 했을 때만 해도 저 선수가 프로에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지금 부족할지라도 해당 학생 선수가 가진 잠재력을 파악하고 지켜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는 프로 수준에 맞춰져있는 내 눈높이를 낮추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신안산대는 지난 6일 야구부 창단을 선포하고 강태원 초대 감독을 선임했다. (사진=신안산대 제공)
신안산대는 지난 6일 야구부 창단을 선포하고 강태원 초대 감독을 선임했다. (사진=신안산대 제공)

■ 코치를 거쳐 신안산대 야구부 감독으로 = 스카우트로도 성공을 거둔 그가 선택한 길은 아마추어 야구의 코치였다. 전주고 코치를 시작으로 다양한 중·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맡으며 경험을 쌓았던 그는 “스카우트 경험을 살려 선수들을 이해하는 코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었다”며 “코치를 하면서 나는 야구를 놓을 수 없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치를 하면서 고교야구보다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대학야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대학야구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스카우트나 코치를 하면서 선발되지 못해 대학야구로 간 선수들을 많이 봤지만 그들이 가진 야구에 대한 열정은 뽑힌 선수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학야구에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많다. 야구 선배로서 그들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이런 그에게 신안산대가 손을 내밀었다. 신안산대는 야구부 운영에 대한 상세한 계획과 그의 장기적인 안목에 흔쾌히 야구부 창단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그는 “지역사회 스포츠문화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신안산대의 목표와 대학 야구 관심 제고라는 내 목표가 만나 예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야구부 창단을 결정지을 수 있어 기뻤다”며 “신안산대 야구부를 통해 안산 지역의 야구 붐을 일으키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내년 감독 데뷔를 앞둔 그는 현재 이곳저곳을 다니며 야구부 창단 준비를 위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힘들어도 처음 맡는 감독이라는 책임감에 쉼 없이 준비하는 그가 생각하는 신안산대 야구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정한 기회’와 ‘소통’이었다. “한번 실패를 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말처럼 신안산대 야구부는 안산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부로서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해 임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선수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이에 대한 소통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발전해나갈 신안산대 야구부에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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