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호 본지 논설위원·중앙대 영문과 교수

오늘날 인문학의 전선이 너무나 고요하다. 세계적 경제위기, 국제분쟁, 어려운 국내 문제들 앞에서 시끄러워야 할 인문지식인들은 어디 있는가. 새로운 문물 상황과 사건들의 맥을 잡기 위한 관찰, 분석, 나아가 사태해결을 위한 평가와 대응전략 수립에 분주해야 할 대학 지식인들은 어디에 숨었을까.

나를 포함해 모두가 자신만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다. 밤늦도록 연구실에 불을 켜놓고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논문을 쓰고 있다. 학술논문만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학술논문 생산에 열을 올린다. 모두가 전공분야, 소위 ‘전문주의’에 빠져 있다. 그들만의 전공학술지에 실릴 별로 소통되지 않는 논문을 제조하고 있다. 누가 인문지식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최근 한국 정부의 학문정책은 어쩐 일인지 금융 자본시장의 논리처럼 무한경쟁의 논리를 부추기고 있다. 연구비로 학자들을 유혹하고, 논문 편수로 강단 지식인들을 줄 세우려 든다. 통합적이고 계몽적인 현실참여와 거리가 먼 기술적·기능적 논문중심의 자연과학 연구체제를 인문학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한 결과일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네 탓’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미 언제나 인문지식인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현시점에서 강단 지식인들의 계몽적 기능은 회복돼야 한다. 계몽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인문지식인들의 사회적 참여를 방해하는 것이고 대중과 함께하려는 지식인의 시대적 소명의식을 약화시키려는 음모다.

지식인들 모두가 현실과 역사의 거리를 떠나 폐쇄된 자기만의 연구실로 은둔해 버린다면 누가 이 시대를 제대로 응시하고 비판할 것인가. 우리를 끊임없이 잠들게 하는 자본과 시장과 권력이라는 수면제 복용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인문지식인으로서 직무유기다. 학술논문 중심의 연구업적제도에 번롱당하고 연봉제에 짓눌리며 연구비 사냥에 눈까지 어두워진 나를 포함한 많은 인문지식인들이여! 이제는 인문학 분야에서 사회적 효용이 거의 없는 학술논문보다 책을 쓰자. 일반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문학적 향기가 피어나는 책을 쓰자. 공감의 상상력을 넓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인문학 책들을 써 보자.

인문학자들로 하여금 책을 쓰게 하려면 전공 학술논문만 우대하는 기존의 연구풍토를 바꿔야 한다. 연구업적에서 저서의 비율을 높이고 출판연구비도 확충해야 한다. 인문적 소양이 담긴 책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한다.

오늘날 국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의 기저에는 이미 언제나 인간에 대한 이해부족이 웅크리고 있다. 문명과 역사를 주관하는 것은 ‘인간’이므로 인간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인문학적 접근은 필수적이다.

인간학의 문제는 인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나아가 자연과학과의 통섭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문주의’ 논문과는 달리 책은 인간문제에 관한 논의를 융합적 혹은 좀 더 포섭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책 쓰기뿐 아니라 ‘번역’도 중요하다. 번역은 쉽지 않고 오역에 빠질 위험이 크기에 많은 교수들이 기피한다. 번역작업은 연구업적에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금전적 이익조차 없다.

그러나 번역은 한 편의 논문이나 한 권의 책보다 문화적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다. 번역은 문화의 소통이고 지식의 확산이다. 번역을 통해 지식·이론·정보의 소통이 원활할 때 주체적·독창적인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생긴다.

외부와의 소통이 안 되는 사회는 정체되며 변하지 못하는 역사는 정지된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번역이 학위논문 이상으로 인정된다. 우리도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많은 인문학자들이 고전과 현대의 명저들을 골고루 번역 소개해 균형 잡힌 문화국가를 만드는 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인문학도여, 번역에 도전하자!

저술작업과 번역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와 정책이리라. 더 큰 문제는 실천하고자 하는 인문학도들의 의지다.

학술논문 제조에 바쁜 소장학자들에게 저술과 번역을 강조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터무니없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에 거스름 없이 순응만 한다면 어떻게 새로운 시대가 창조되겠는가. 현실을 모방하고 시대를 따라가려는 노력은 이제 끝내자.

타인들의 지시가 아니라 우리만의 새로운 의제를 만들 때 주체성 있는 또 다른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수 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