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기 영등포여고 교사

서남표 KAIST 총장이 무시험·면접으로 신입생 150명을 선발하겠다는 입시안을 발표하자 수도권 일부 사립대들도 앞 다퉈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대학의 지명도가 떨어지기라도 하는 양 경쟁적으로 확대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노라니 이것이 우리 대학들의 수준인가 하는 씁쓸함마저 느끼게 된다. 지난 2008학년도 전형계획이 발표된 이후 각 대학이 변별력 보완과 고교교육 정상화를 고려한다는 명분하에 경쟁적으로 논술을 확대했던 것도 생각난다. 결국 논술 광풍은 1년도 채 못가서 사그라들고 말았기 때문에 현재 입학사정관 광풍도 앞날이 우려스럽다.

성적 만능주의의 입시 현실에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평가하겠다고 2009학년도 입시에 처음 도입된 입학사정관 전형은 충분한 홍보 없이 도입돼 일선 학교에서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이번에는 이미 발표된 전형계획의 배정 인원보다 몇 배에서 몇 십 배의 인원을 더 선발하겠다고 발표해 일선학교뿐만 아니라 학생·학부모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일선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은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한 정확한 내용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갑작스럽게 확대 시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으니 더욱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보면 입시가 시작되기 1년 3개월 전에 전형계획을 발표토록 돼 있어서 2010학년도 전형계획은 이미 지난해 11월 발표됐었다. 최근 발표는 지난해에 발표한 것을 변경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입시업무를 총괄하는 대교협의 전형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상황을 보니 이들 대학들은 전형계획을 수립·발표할 때 교육수요자의 입장을 고려하는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고1 때부터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고3이 시작된 이 시점에서 어떻게 준비하라는 것인가. 갑작스럽게 선발인원을 늘리는 것을 보면 이들 대학의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입학사정관의 역할도 짐작할 만 하다. 학생 선발에 전반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기존의 입학처 직원이나 교수들이 했던 학생부 비교과성적 산출이나 면접 참여 등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조건이 있다. 첫째, 우수인재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 글로벌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변화된 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단순히 수능성적 우수학생을 우수인재로 판단한다는 인상이 짙다. 둘째,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한 홍보가 강화돼야 한다. 지난해 처음 도입된 전형으로서 일부 학교에서는 전형의 정확한 내용을 몰라서 지원을 못한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교과부나 대교협 차원의 체계적인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셋째, 입학사정관의 정원 확대와 신분보장이 필요하다. 현재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선발하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과 윤리적 책임의식이 필요한 직책인데, 신분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이를 요구하기 어렵다. 만일 이들이 계약 만료 후에 해당 대학 입시컨설턴트로 나선다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수없이 바뀌었던 우리나라 입시제도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제도가 입학사정관제도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람직하게 정착되어 왜곡된 입시문화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교육현장에서 입시지도를 하는 일선교사의 바람이다. 대학에서도 준비 없는 양적 경쟁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준비에 따른 질적 경쟁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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