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대학 관리할 역량 있나” 회의·우려 목소리
“소규모 대학에는 단비…일단 제도 시행이 우선”
‘또 다른 권력’ VS ‘균형 발전’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 나뉘어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분야 국정과제로 '지방대학 시대'를 내세웠다.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분야 국정과제로 '지방대학 시대'를 내세웠다.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윤석열 정부가 ‘지방대학 시대’를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지자체에 중앙의 권한을 위임한 공약에 대해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향후 지자체의 권한 강화에 따른 효과와 역량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는 한편 다른 한 쪽에서는 일단 공약 사항을 실천하고 난 뒤에 우려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분야 국정과제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내걸고 지역·대학 간 연계·협력으로 지역인재 육성·지역발전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세부적인 공약으로는 △지자체 권한 강화 △지역인재 투자협약제도 △지역 거점대학 육성 △대학 중심 산학협력·평생교육 등이 있다.

특히 지자체 권한 강화는 지역대학에 대한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역대학에 대한 행·재정적 권한을 지자체로 위임한다. 이를 위해 지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지자체, 지역대학, 지역 산업계 등이 참여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동안 대학가는 역대 정부와 교육부의 중앙집권적 규제와 관리를 규탄해 왔다. 대학의 자율성이 사라지고 지방은 고사 위기에 몰렸다는 비판이었다. 이 때문에 윤 정부의 ‘지방대학 시대’ 기조를 대학가에서 두 손 들어 환영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장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 지자체 권한 포화…대학 이끌 역량 있나 회의적 목소리 = 이러한 분위기는 대형 대학과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감지되고 있다. 지난 4월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 정기총회에서 진행된 ‘대통령 인수위원회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몇몇 총장들은 지자체 권한 확대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김승우 순천향대 총장은 ”지자체 권한이 이미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지자체가 합리적인 지역 발전과 지역대학 발전을 추진할 역량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짚었다.

지난 23일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하계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김헌영 강원대 총장은 “정부의 각종 위원회 설립이 추진되는 가운데 위원회나 지역인재 투자협의에서 기본은 지자체와 대학의 수평적 관계”라며 “지자체가 권한을 가지고 지역대학을 컨트롤하는 데 대해 노파심이 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참석 총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교육부 기자단이 준비한 설문에서 ‘윤석열 정부의 지방대학 시대에 따라 비수도권 대학에 대한 행정, 재정적 권한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위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찬성은 50.56%, 반대는 49.44%로 나타났다.

반대 의견에 대한 비율은 비수도권 대학이 59.65%로 28.57%를 기록한 수도권 대학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대학의 규모가 클수록 반대 의견이 높았다. 대형 규모 대학의 반대 응답율은 57.69%, 중·소 규모의 대학에서는 각각 47.5%, 42,86%로 소규모 대학으로 갈수록 찬성 의견이 높았다.

특히 국공립대의 경우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자체 권한 강화에 대해 국공립대 총장 응답자의 82.35%는 반대 의견을 보였다. 사립대 총장의 반대 응답율은 42.86%로 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 지방 소규모 대학에는 필요…일단 시행부터 해야 = 충청 지역의 A대 관계자는 “교육부가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진 구조에서 지원과 투자보다는 규제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지자체로 권한을 위임하면 지역과 대학이 함께 특화된 부분을 육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역 대학이 더 활성화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북 지역의 B대 관계자도 “지자체 혁신플랫폼 사업 등 역시 지역과 대학이 협력해 시너지를 보고 있는 사업 아니겠느냐”며 “오히려 지역에 고르게 예산이나 사업을 분배하게 되면 특정 지역 쏠림 현상이 줄어들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립대 지원 집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C대 관계자는 “지역 중심으로 권한을 주게 되면 사립대보다 국립대에 지원이 집중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중앙집권적인 지원과 통제 방식에는 분명 부작용이 있어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제도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지방 역시 마찬가지”라며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시행을 해야 한다.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도 논의와 협의가 되면 가능해 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황 사무처장은 “지역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책임을 부여해 직접 여건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라며 “앉아서 먹이만 받아먹기보다 지원을 통해 직접 살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전문가들이 보는 ‘지방대학 시대’는 = ‘지방대학 시대’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지자체 권한이 강화되면 지역 대학에 미치는 영향이 강화될 것이란 부정적 시각도 있는 반면,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 중앙과 달리 지자체의 지역 살리기로 균형발전이 이뤄질 것이란 예측도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는 지난 5월 인수위 고등교육국정과제 발표 이후 논평을 통해 ‘지방대학 시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대교연은 “학령인구 감소가 수도권대학보다 지방대학에 주는 충격이 더 크기 때문에 지방대 육성 정책도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지자체장은 선출직 공무원이고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사립대 이사장이나 교수들은 지역사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행·재정 지원이 지자체장과의 친소관계나 선거를 의식한 지역사회 영향력 등에 따라 몰리거나 나눠먹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임은희 대교연 연구원은 “지방대학 시대라는 기조 자체는 대학이나 국가균형 발전, 지역소멸 등의 문제에 있어 필요한 과제”라면서도 “지금 고등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가 재정의 문제, 지역 대학의 구조적 문제인데 이는 정부에서 큰 그림을 갖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사안인데 지자체에 이를 넘긴다는 것은 안일한 자세”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결국 예산의 문제인데 고등교육 재정 지원 규모나 사업성 예산 지원 방식 등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나눠먹기를 우려하는데 그런 우려라면 모든 지방자치는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중앙은 괜찮고 지방은 부정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일축했다.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은 단시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선택과 집중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큰 대학만 살고 특정 지역을 살릴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지역을 살려야 표를 받을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장들은 대학의 존립을 판단할 때 지방 살리기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다만 대학의 청산까지 지자체에 맡기겠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대해서는 반대한다. 청산 권한까지 지자체에 주게 되면 그때야 말로 진짜 부정이 나타날 수 있다”며 “대학의 폐쇄와 청산 절차만큼은 지방에서 분리해 중앙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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