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 (한국사학진흥재단 사무총장)

세계는 지금 패러다임 전환기에 접어들어 있다. 미국을 정점으로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되던 세계자본주의 시스템에 금이 가면서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고 있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좀 더 진보적으로 만들기 위한 각국의 경쟁 또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나라별로 전략적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지만 대체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지속적으로 가능한 신성장모델’을 찾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녹색성장이라는 어젠다를 중심으로 정부, 시장, 시민사회가 각기 다양한 형태의 실천전략들을 모색 중이다.

교육 영역에서 녹색성장론은 그저 홍보팸플릿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최근에는 녹색성장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교육과정에 투영되고 있는 정도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녹색성장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교육환경을 녹색패러다임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굴뚝산업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효율’과 ‘소프트파워’라는 선진화된 가치체계를 지향한다.

따라서 녹색성장과 선진화는 동일한 담론적 지향성을 가진다. 비효율적인 한국 교육의 틀을 보다 더 효율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문별 전략체계에서 볼 때 교육영역에서의 녹색성장과 교육선진화는 이음동의어다.

선진화는 상대적 가치다. 따라서 선진화의 기준인 한국 교육의 효율성 증대는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등치시킬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대학들의 글로벌 경쟁력 순위를 최소한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 수준으로는 끌어올려야 한다. 경제규모만큼 10위권은 아니더라도 OECD 회원국 숫자의 범위 밖으로는 밀려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정보공시제는 고등교육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단초가 되고 있다.

대학이 안고 있는 각양의 부실요소들을 과감히 도려내는 구조개혁도 교육 영역에서 녹색패러다임을 창출하기 위한 선결과제 중의 하나다. 과도한 자원낭비를 수반하는 불요불급한 조직이나 인력을 줄여 몸을 가볍게 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구조개혁 방법으로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정부의 간섭 없이 개별 학교 스스로 학과 통폐합이나 정원감축 등을 단행해 이것이 고등교육 전체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갈등과 기회비용은 최소화하면서 구조개혁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여건상 이러한 자율적 조정이 어려울 경우 정부가 각종 정책수단을 동원해 구조개혁에 나서는 적극적인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인위적 통폐합과 같은 네거티브 방식이 아니라 재정지원을 통해 합병을 유도하는 식의 포지티브 방식이 더욱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일본도 소자화(학령층 인구감소)에 따른 대학의 재정악화가 심화될 것에 대비해 대학의 경영 상태를 엘로우존과 레드존 등으로 구분, 단계별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이 밖에 교육환경을 소프트파워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 나가는 것도 녹색성장, 선진화의 주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사학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시설자금 융자금 중 일부를 특화해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연구나 교육 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의 첨단설비 확충 등에 지원하는 방안도 사학진흥재단에서 검토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학교다. 향후 백년대계의 좌표는 녹색성장과 교육 선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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