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민관식육영재단 명예이사장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날만큼 기쁜 날이 없습니다.”

김영호 소강민관식육영재단 명예이사장(84세)은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고 말한다.

소강민관식육영재단은 문교부 장관을 지낸 고 민관식 박사가 지난 1957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3년전만해도 이 재단의 명칭은 ‘중산육영회’였다. 중산 민완식 선생의 호를 땄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던 공산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서북청년단 단장 중산 민완식 선생이 민 박사의 형이다. 두 형제는 언젠가 약속을 했었다. 어려운 이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장학사업을 반드시 하자고 결언을 다졌다. 중산 선생이 어려운 형편으로 소학교(당시 초등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학업을 마쳐야 했고 민 박사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 장학금으로 일본 교토대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터다.

김영호 명예이사장은 작고한 고 민관식 박사의 미망인이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마자 장학사업을 시작했고 1회 장학생들이 벌써 67~68세가 됐습니다. 고마운 것은 이렇게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던 장학생들이 사회에서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매년 장학금에 보태라고 모금을 해다 주는 것이죠.”

그들 중 일부는 정월에 꼬박꼬박 세배를 오곤 한다. 민 박사는 그들을 보고 참 행복해했다고 김 이사장은 회상했다. 가수 조영남과 배우 윤여정도 이 재단의 장학생이었다.

장학사업의 가장 큰 의의는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이렇게 학업의 기회를 얻었던 이들이 또다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고 믿는 것이더라도 50년이 넘도록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개인이 사재를 털어야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을 그만두게 되니 장학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죠. 그래도 학생들을 돕는 일은 그만둘 수가 없어 나중에는 빚을 얻어야 했습니다.”

이렇게해서 김 이사장은 그간 2006년 민관식 박사가 작고할 때까지 그리고 이후 3년간을 더해 총 53회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고 장학생 700여명을 사회에 내놨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주던 장학금을 올해부터는 대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중학교도 의무교육이 되다보니 고등학생을 비롯해 특히 대학생들로 장학사업의 대상을 옮겨가려 합니다. ”

지난달 28일 2009년도 장학생으로 국공립대 총장이 추천한 우수 입학자 10명에게 장학금 500만원씩을 전달했다. 내년부터는 국공립대 뿐만 아니라 사립대 학생들 가운데에서도 형편은 어렵지만 학업에 열의가 높은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대한체육회 회장직을 7년간 지낸 민 박사인지라 매년 체육장학생도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

“각 학문 분야 뿐만 아니라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크게 빛을 발할 우수한 인재들 또한 많습니다. 이들도 도와야죠.”

김 이사장은 민 박사의 뜻을 이어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학생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김 이사장은 그것이 50년 이상 가져다 준 행복임을 알고 있으며 또한 여생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나누는 일’ 그리고 ‘후학을 키우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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