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본지 논설위원·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올 봄에도 예외 없이 대학가에선 등록금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총학생회장의 삭발은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듯하고 ‘등록금 천만원 시대’를 비난하는 구호가 요란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호응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걸 보면, 이제 대학가 등록금 투쟁도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다.

등록금 투쟁의 논리를 곰곰 들여다보면 사회심리학에서 널리 원용되는 ‘희생자 비난하기’ 개념이 연상된다. 원래 이는 1970년대 미국의 대표적 도시 빈민 연구가 윌리엄 라이언에 의해 제안된 개념인데, 등장하게 된 맥락은 이러하다.

당시 도시 빈민 연구자 대부분은 흑인이 미국사회 빈곤층의 다수를 점하게 된 배경으로서 그들의 게으름, 무능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현재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안일함을 지목했다.

이들 사회적 통념에 대한 라이언의 반박인 즉, ‘빈곤의 흑인화’ 현상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인종차별주의(racism)’에서 찾아야 하거늘 이를 흑인 개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함은 실상 희생자인 흑인을 오히려 비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라이언의 주장에 따르면 흑인의 게으름은 흑인에게 정당하고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 인종차별주의하에서 나타나는 피상적 현상이요, 미래의 비전을 가질 수 없는 흑인 개인 입장에서는 게으름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적 수준의 합리적 선택이 구조적 수준의 비합리성을 강화하게 되는 상황이야말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의 불합리성·불공정성·부정의함을 반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가 등록금 투쟁을 향해서도 비슷한 논리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학생들이 비난하는 대학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교육 몰락 및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의 일차적 피해자요, 대학의 자율성 및 경쟁력보다 규제 및 형평성에 무게를 두는 교육정책의 직접적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되는’ 등록금을 감당해야 하는 대학생 자신들도 피해자임은 분명하다. 다만 피해 보상을 동일한 피해자에게 청구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교육비 지출률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 점은 사교육비 지출이 공교육 투자를 압도한다는 사실, 이로 인해 개별 가족 차원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아낌없이 교육비를 지출하건만 우리나라 공교육의 글로벌 경쟁력은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모르랴.

설상가상으로 이제 교육은 더 이상 계층 상승을 가능케 하는 성취적 요소를 상실한 지 오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기회 및 성취도를 상당부분 결정하기에 오늘날의 교육은 ‘귀속적 지위’로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계속 확대되고 있는 강남북 지역의 학력 격차 및 입시명문 학원 밀집지역이 부동산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기현상에 더해 상류층 자녀를 중심으로 한 두뇌유출은 이미 오래전 시작된 만큼, 우리 모두 조금 더 냉정하게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때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그렇다면 명분뿐인 등록금 투쟁 대신 대학교육의 내실화 및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대학생다운 신선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는지.

고비용 저효율의 악순환을 끊고 무수히 낭비되는 사교육 재원을 공교육으로 당당히 흡수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은 무엇일지, 교육의 본래 기능으로서 기회균등을 실현하고 양극화를 제어하기 위해선 국가와 대학 차원에서 어떠한 정책 도입이 필요할지, 글로벌 차원의 무한경쟁 시대에 대학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급격한 외부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히 요구될지 등을 끊임없이 묻고 치열하게 답을 구할 일이다.

단·다원적 가치가 충돌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최선의 선택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이보다 더 나쁘진 않다”는 차선의 선택을 취하는 지혜도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현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의 무조건적 동결이나 장학금의 무한정 충원 등을 요구함은 대학생의 치기어린 비현실적 주장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대학의 주체들이 중지를 모아 함께 나아갈 때지 피해자 비난의 우를 대책 없이 반복할 때가 아님은 자명하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