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증원 문제 맞물려 논란 예고

연세대와 고려대가 추진하는 약학대학 설립방안이 약대증원 문제와 맞물려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 약대들은 양교의 약대 설립이 기존 약대 증원 노력에 악영향을 미칠지 우려한다. 특히 정원 30~60명 규모의 약대들은 “기존 약대에 대한 증원이 시급한 상황에서 연고대의 약대신설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약대 설립은 현재 1200여명 선인 약대 정원이 늘어나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가족부의 인가 외에도 대한약사회·한국약학대학협의회·약대교수협의회 등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양교가 “약대설립에 있어서 공동보조를 취하겠다”고 한 대목은 이 때문이다. 정부부처와 유관기관의 협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국내 사학을 대표하는 양교가 힘을 합쳐야 가능하단 얘기다.

그러나 양교의 약대설립은 향후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정원 30~60명 이하의 약대들은 벌써부터 양교의 약대설립 방침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등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산대 이복률 약대학장은 “현재 약대 정원이 30~60명인 대학들은 약대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기존 약대에 대한 증원이 절실한 시점에서 약대 기반이 전혀 없는 연세대와 고려대에 먼저 정원을 할당해 줘선 안 된다”고 밝혔다.

부산대·전남대·충남대·우석대·삼육대 등 정원 30~60명의 중소형 약대에 대한 증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성주 충남대 약대학장도 “지금은 약대 신설 논의가 시급한 게 아니라 기존 약대를 6년제 시행에 따라 내실화시키는 게 급선무”라며 “고려대와 연세대의 약대 신설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약대 수업연한은 올해부터 6년으로 늘어났다. 약대가 ‘2+4’ 체제로 바뀜에 따라 약대가 아닌 다른 학부(학과)에 입학한 학생도 대학 2년 과정을 이수하면 입문자격시험을 통해 약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약대가 설치된 전국 20개 대학은 올해부터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약사수급 면에서 2년간의 ‘공백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약대들은 ‘6년제’ 시행에 따른 실무·임상교육 강화를 위해서도 약대증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가족부도 여기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이복률 학장은 “약대 수업연한이 6년제로 개편되면서, 교수채용·교과과정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학생수가 최소 80명은 돼야 본부로부터 이런 부분에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실무·임상과 관련한 교과목을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약대증원 규모도 문제지만, 이를 기존 약대와 신설 약대에 어떻게 배정할지가 관건이다. 현재 연·고대 외에도 경남·제주·울산 등 약대가 없는 지역에서 몇몇 대학이 약대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기존 약대들은 약대증원이 신설대학 중심으로 배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약대들은 국내 대표사학인 연·고대가 손잡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지방 사립대 약대학장은 “힘을 가진 연고대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해 상당수의 약대정원을 배정받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려대는 “이전부터 약대 설립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며 “보건복지부와 대한약사회 등으로부터 긍정적 답변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약사회 내에서도 “연·고대와 같이 명문대가 약학교육시장에 들어와야 약사회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기존 약대들에 대한 증원 없이 고려대와 연세대의 약학교육시장 진입을 허락하면 논란은 심화될 전망이다. 임종필 우석대 약대 교수는 “지방 대학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증원 요구는 무시하고 힘 있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면 반발이 심할 것”이라며 “국고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립대 약대 증원을 먼저 인가해 줘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경희대·중앙대·이화여대·성균관대 등 정원 80명 이상의 약대들의 반발은 비교적 덜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약대 교수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약대를 설립하면 아무래도 국내 약학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라며 “반대하고 있는 기존 약대들에게도 정원을 늘려주면 반발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한약사회와 약학대학협의회는 공식입장을 꺼리고 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양교의 약대 신설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며 “보건복지부, 약학대학협의회 등도 이해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먼저 섣불리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밝혔다. 서영거 한국약학대학협의회장도 “약대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아직 약학대학협의회 차원에서 공식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약대 편제정원은 1200명 정도지만, 농어촌 전형 등 정원외까지 포함하면 1400명에 달한다. 이는 연간 배출되는 약사인력 수다. 약대들은 2년간의 약사수급 공백기와 병원약사 인력 부족인원을 매우기 위해선 적어도 매년 2400명 정도의 약사가 배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늘어난 약대 정원이 연·고대가 추진하는 약대에 얼마나 많이 배정될지, 기존 약대 증원 규모는 얼마나 될지 등에 따라 논란의 강도가 달라질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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