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학 '국제화 전형' 특목고출신에 유리하게 요건완화

일부대학들이 국제화 관련 전형에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서 외국어고 등 특목고 학생에겐 자격요건을 완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입학사정관제가 특기나 적성, 잠재력을 중시하기보다는 어학실력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데 활용되면서,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기존에 운영하던 특별전형에 입학사정관을 부분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입학사정관 전형을 갑작스럽게 늘린 대학도 있어 ‘무늬만 입학사정관제’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22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의 주요 대학 중 국제화 관련 전형에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대학은 모두 9개 대학이다. 가톨릭대·경희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한국외대 한양대 등이 국제화 전형에서 서류평가 등에 입학사정관을 참여시키고 있다. 특히 이중 일부 대학이 외국어고 등 특목고 학생에게는 지원 자격에서 사실상의 특혜를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희대는 지난 2007년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서 국제화추진전형을 국제화전형으로 바꿨다. 서울캠퍼스는 서류평가 60%·심층면접 40%로 150명을 선발하고, 국제캠퍼스는 외국어 성적으로 3배수를 뽑은 뒤, 1단계 성적(40%)과 면접(60%)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경희대의 경우 국제화전형에 지원 자격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토익은 900점, 토플(CBT)은 263점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어·국제 전문교과 58단위를 이수한 학생은 공인 외국어 성적이 없어도 지원이 가능하다. 외국어고 학생의 경우 토익점수가 없어도 지원이 가능하단 얘기다. 경희대 관계자는 “어학특기생을 뽑기 위한 전형이기 때문에 공인 외국어 성적으로 외국어 소양을 갖췄다고 증명하거나 전문교과를 이수해 이를 갖춰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총 230명을 선발하는 글로벌리더 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성균관대도 공인외국어 성적을 요구하고 있다. 토익은 900점, 토플은 (CBT) 270점 이상이다. 그러나 성균관대도 외국어·국제에 관한 전문교과 이수자에 대해서는 공인 외국어 성적요건을 면제해 주고 있다.

연세대도 500명을 선발하는 글로벌리더 전형에서 ‘외국어·국제 전문교과 58단위 이상’ 요건을 채우면 공인영어 성적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국제 올림피아드 참가자나 국내 올림피아드 입상자’에 대해서 지원자격을 주는 것도 특목고에 유리한 대목이다. 이런 ‘스팩’이 없는 학생이라면 수학·과학관련 교과 이수단위 합이 35단위 이상이면서, 각 교과별 이수단위 가중 평균이 3.0등급 이상이어야 한다. 또 2개 이상의 외국어에 관한 공인성적을 제출해야 지원할 수 있다.

한양대도 120명을 뽑는 글로벌한양 전형에서 일반고 지원자는 △국어·영어(인문사회계열) △영어·수학(상경계열) △과학·수학(자연계열)에서 교과별 상위 3개 과목 평균등급이 2.5등급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특목고 학생은 외국어·국제 전문교과를 15단위이상만 이수하면 된다. 한양대 입학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고 학생도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 성적 평균이 2.5등급이기 때문에 불리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고에선 입학사정관전형이 본 취지와는 다르게 특목고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인고 3학년 진학 담당 교사는 “일부 대학들이 국제 전문교과 이수를 지원자격으로 하는 것은 사실상 외고 특혜나 마찬가지”라며 “외국어·국제 전문교과는 일반계 고교에선 이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척고 3학년 진학담당 홍은표 교사도 “일반고에서는 국제화 관련 전형에 지원할 정도로 우수한 외국어 능력을 갖춘 학생이 거의 없다”며 “오히려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내신이 불리한 특목고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대학들이 정부지원금을 노리고 앞다퉈 입학사정관제 도입하면서, 기존의 특별전형에 ‘무늬’만 씌워 입학사정관(참여)전형으로 발표했다는 지적이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글로벌 리더 같은 특별전형은 원래 어학을 잘하는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전형”이라며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바뀌는 것은) 입학사정관들이 서류를 본다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취지가 훼손될 우려가 지적되고 있다. 손종현 경북대 입학사정관은 “입학사정관제 도입은 우리나라 대입 선발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전형에 도입돼야 한다”며 “기존의 특별전형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 대학들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몇몇 대학에서 국제화 관련전형에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어학실력이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고 하는데 특목고나 외고생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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