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128명 서명, "시국선언이 사회 분열 초래"

보수 진영의 교수들은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릴레이식 시국선언’에 대한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박효종 서울대 교수, 안세영 서강대 교수 등이 참여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이 주최하고 128명의 교수들이 서명해 마련됐다.

이들 교수들은 “노 전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회가 분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교수들이 중심을 못 잡는다”며 “릴레이식 시국선언으로 사회를 갈등과 분열의 양상으로 몰아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정파적 의견을 교수사회 전체의 의견인 양 과장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우려한다”며 “쟁점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시대적 요구인 것처럼 포장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 교수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국선언문들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민주주의 후퇴라는 말이 너무 남용된다”며 “소통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민주주의의 후퇴다고 규정짓는 것은 비겁하다”고 말했다.

서울 광장 개방에 관해서도 자유는 방종과 다르다며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불법 폭력 시위를 통해 법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의 의도를 봐야한다”며 “국민의 안전과 사회의 평화를 위해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수 진영의 교수들도 현 정권에 소통과 국정쇄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섬김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 전대통령 서거 이후 민심이반 현상이 크게 드러나 현 정부는 과감한 국정쇄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문> 전문

일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바라보는 우리의 견해

지금 한국사회는 난국에 처해 있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험난한 고통을 강요하고 있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안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사회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내외의 엄중한 상황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뜻과 마음을 합쳐 위기를 돌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일부 대학교수들이 ‘릴레이식’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파적 의견을 교수사회 전체의 의견인 양 과장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깊이 우려하며 유감으로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엄중한 자기반성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이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는 대학교수들이 비판적 지성을 가진 지식인으로서 사회와 정치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책무를 지니고 있으며 과거에도 그런 역할을 해 온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일부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태도인가 하는 데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과거 4·19민주혁명이나 6·10 민주항쟁 때는 명백한 선거부정과 강압적인 통치방식에 대해 항거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또 이를 위해서는 촌각을 다투어야하는 절박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작금의 상황에서 정치권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 약속한 대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섬기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여당은 웰빙 체질을 벗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국회보다 광장으로 달려 나가려 하고 있다. 이 모두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린 실망스러운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우리는 정부 정책에 비판을 하고자 한다면 누구든지 보다 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따지고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는 시국선언문들에 담겨있는 내용이 균형 감각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한다. 이들 선언문은 한국사회의 다수 국민들이 이념적 입장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보다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등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시각과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마치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시대적 요구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점은 비판적 지성으로서 공정하고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셋째, 일부 교수들은 시국선언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일부 언론과 방송이 정부·여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지식인들이 개별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써도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처럼 탄압을 받고 있지 않다. 그런가하면 최근 경찰은 뭇매를 맞으면서도 폴리스 라인을 넘는 일부 과격폭력시위에도 인내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과연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자유는 방종과 다르며 자율과 책임이 따른다. 쇠파이프와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불법·폭력을 동반하는 집회나 시위마저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서울 광장은 누구에게나 무조건 개방되어야 하는 장소는 아니다. 자유의 남용 수준에 이른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사회의 평화, 나아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일방적 주장을 담은 시국선언의 형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기보다는 공론의 장에서 건설적 대화와 학문적 소통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에 우리는 적절한 시점에서 시국선언을 한 교수들과 공개적 학술토론회를 포함, 각종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정중하게 제안하는 바이다.

지성은 지성다운 태도를 가질 때 의미가 있다.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소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지성도 마찬가지다. 지성이 불편부당성과 겸손함을 가질 때, 비로소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들만이 공감하는 정파적 내용을 시국선언이라는 형식을 빌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공정한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적 공감대가 부재한 상태에서 쟁점과 토론의 주제가 될 만한 사안들을 굳이 선언문형식으로 발표하여 국민들을 격동케 하는 것은 지성의 바른 표출이라고 볼 수 없으며,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본다.

또한 각 대학공동체의 전체 구성원이 아닌 일부 교수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 대학교 교수 일동’이라면서 해당 대학의 전체 교수 의견처럼 사회에 비치게 만들고, 나아가 릴레이식 시국선언을 통해 많은 대학들이 나섰다는 식의 인상을 주려 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교수들 개개인의 의견이지 소속 대학의 이름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 모두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통합과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며 모든 이들의 중지를 모아 우리가 처한 심각한 내우외환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만의 정파적 견해를 정론인 것처럼 강변함으로써 사회에 혼란을 조성한다면 이는 무책임하고 비지성적 태도이다. 우리 모두 ‘남 탓’을 하기보다 스스로의 잘못은 없었는지 차분히 성찰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다 같이 협력하고 다함께 힘을 모을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2009. 6. 9


<서명자 명단>

강경근(숭실대) 강규형(명지대) 강신천(공주대) 강용구(공주대) 강철희(연세대) 곽태원(서강대) 곽한병(경기대) 구정모(강원대) 권근원(서경대) 권봉상(경기대) 김경환(성균관대) 김경환(서강대) 김관보(카톨릭대) 김광윤(아주대) 김명수(한국교원대) 김민호(성균관대) 김성수(강남대) 김세곤(동국대) 김세중(연세대) 김영기(경인교대) 김영호(성신여대) 김용직(성신여대) 김용철(부산대) 김원식(건국대) 김정동(연세대) 김종석(홍익대) 김지철(세종대) 김창석(공주대) 김형곤(건양대) 김호섭(중앙대) 남성일(서강대) 노부호(서강대) 류병운(홍익대) 류청산(경인교대) 류해일(공주대) 문선화(부산대) 박동운(단국대) 박상규(연세대) 박영석(조선대) 박인환(건국대) 박형래(강릉대) 박효종(서울대) 배기효(대구보건대) 배진영(인제대) 배호순(서울여대) 변지석(홍익대) 변홍식(계명대) 선우석호(홍익대) 성극재(경희대) 손기형(전남대) 손양훈(인천대) 송호열(서원대) 신도철(숙명여대) 신윤창(강원대) 안세영(서강대) 안재욱(경희대) 안종범(성균관대) 양준모(연세대학교) 엄기욱(군산대) 오성(세종대) 오한진(관동대 의대) 유세희(한양대) 유양근(강남대) 유호열(고려대) 윤석민(서울대) 윤창현(서울시립대) 이경주(홍익대) 이규식(연세대) 이덕봉(동덕여대) 이명희(공주대) 이상복(강남대) 이상훈(재능대학) 이석규(세종대) 이성호(중앙대) 이영철(광주대) 이윤식(인천대) 이은영(한국관광대) 이재교(인하대) 이종남(극동대) 이종호(공주대) 이지환(경인여대) 이채식(우송공업대) 이평우(고려대) 이학식(홍익대) 이한식(서강대) 이형렬(대전보건대) 이훈구(연세대) 임석철(아주대) 임주영(서울시립대) 장명화(호원대) 전삼현(숭실대) 전선영(용인대) 전엄봉(수원대) 전영록(제주관광대) 전용덕(대구대) 전정수(서경대) 전홍찬(부산대) 정규석(강원대) 정기택(경희대) 정승윤(부산대) 정인교(인하대) 제성호(중앙대) 조동근(명지대) 조동섭(경인교대) 조동우(포항공대) 조성환(경기대) 조승호(강남대) 조윤영(중앙대) 조중근(장안대) 조희문(인하대) 천세영(충남대) 최강식(연세대) 최 균(한림대) 최석만(세종대) 최 인(서강대) 최창규(명지대) 하우봉(전북대) 한혜빈(서울신학대) 허원기(인하대) 허 윤(서강대) 홍기칠(대구교대) 홍성걸(국민대) 홍의석(광운대) 홍재욱(인천대) 황성빈(세종대) 황혜정(조선대) 황홍섭(부산교대). 이상 총 12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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