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중앙대 생명과학과 교수

중앙대 교수로 부임한 지 15년이 됐다. ‘의혈’중앙대 선생으로서 인생의 절반인 30년을 제자들 교육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내 자식같이 사랑스런 제자들에게 의혈의 정신을 가르칠 자신도 자격도 없다. 나는 그저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학생들을 연봉 챙기기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사기꾼이며, 소위 학문의 전당인 아카데미에서 취업교육을 시키는 직업훈련원 강사일 뿐이다.

중앙대가 두산을 새 법인으로 맞이한 지 1년이 지났다. 그 1년 동안 중앙대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변화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앞으로의 1년은 더욱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또 다른 시대를 앞서기 위한 적절한 변화는 필연적이며, 고통 또한 수반한다. 이에 따른 희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 변화가 중앙대 의혈 정신을 계승하는 주체에 의한 변화일 때 중앙의 마음에는 의로움이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의혈 정신의 실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하는 집단에 의한 변화일 때 의혈은 시커먼 피를 뿌리며 결국 죽어갈 것이다. 의혈의 정신이 피폐해 질 때 나는 중앙인이고 싶지 않다. 그런 중앙대에서 내 몸과 같은 제자들을 가르칠 마음은 죽어도 없다. 중앙대 교수들은 의혈의 주체이길 간절히 원하며, 그럴 때 의혈중앙은 밝은 새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대는 이미 전 교수를 대상으로 파격적인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승진.승급 기준을 3~4번 이상 개정했으며, 그 기준은 과거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높게 제시되었다. 또 이사장의 의도에 따라 대학과 학과의 틀을 깨는 전대미문의 대단위 교육단위구조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중앙대 교수들은 의혈을 위해 순순히 피를 뿌렸고, 선홍색 의혈 위에 또 한 번 피를 뿌릴 각오다.

그러나 의혈은 교수들의 피만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의혈 정신의 완성을 위해서는 변화를 원하는 주체의 피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신의 희생이 아닌 남의 희생으로 중앙대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의혈이 될 수 없다.

개혁은 주체나 대상에게 모두 아픔이어야 한다. 새로 태어나기 위한 진통이어야 한다. 새 생명을 탄생시켜야 하는 산모나 좁지만 따뜻했던 어머니의 배속으로부터 춥고 두려운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아기 모두 인고를 통해 출산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대상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되는 개혁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고통과 불신만을 남길 것이다.

나는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의혈이고 싶은 중앙인으로서 목숨 같은 제자들에게 정말 선생이고 싶다. 그러나 수백, 수천의 회사, 공사, 그룹 등에 적합한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해 수백, 수천의 취업 특이적 교과과정을 만들 수도 운영할 수도 없는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수업료로 학기당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교수 특이적, 연구원 특이적 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너무나 죄송하다.

의혈 중앙의 교수들은 두산 그룹의 중앙직업훈련소가 아닌 중앙의 주체로서 학생들에게 의혈의 정신을 교육하고 싶다. 그 시기는 아마도 두산이 이사장의 뛰어난 개혁 드라이브에 힘입어 명실공이 재계 1위 기업으로 거듭남을 보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런 자랑스런 두산을 법인으로 두고 있는 우리 중앙대 역시 학계 1위로 우뚝 서고, 의혈 정신이 가득 찬 중앙대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그 날이 과연 올지 의문이 드는 시절이다.

[알립니다] 위 기사는 지난 6월 15일자<제705호> 본지 오피니언면에 실린 '중앙대 개혁이 성공하려면…' 제하의 기고문 온라인판으로, 글 중 "중앙대 의료원장이 삼성의료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중앙은 경악했고 깊은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은 중앙대 의료원장이 삼성의료원에 입원한 다른 이유가 있지 않느냐는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어 삭제함을 알려드립니다.

글을 쓴 이광호 중앙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의료원장으로부터 '그 동안 삼성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아왔고 병력 기록도 그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해당 부분을 삭제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개인의 입원 소식이 알려진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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