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연습지에는 영어 단어며 문장이 빽빽이 적혀져 있었다. 귀에는 +누구나 이어폰을 꼽고 입으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폭넓은 교양 지식과 +가치관 형성을 위한 철학서는 어디에 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은 어느 대학 도서관을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여느 입시학원의독서실이나 자율학습하는 고3 교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같은 모습은 교양수업 시간에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음악 미술시간에 뒷자리에 앉아 영어 공부하는 고교생처럼 교수의 눈을 피해 영어에 +몰두하는 학생이 한두명이 아니다. 학생들은 오히려 이같은 현상이 고교 때보다 더 심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지방 국립대에 다니는 공모양(경영학부2)은 “올해 교양 수업으로 정치학개론을 수강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절반은 수업대신 토익공부를 한연세대의 경우 지난해 인기대출서 20위권 중 절반이 무협지였으며 중앙대도 만화 『십팔사략』이 도서대출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만화류 +서적 6권이 30위권안에 들었다. 서강대는 30위권 안에 무려 21권이 소설류였으며 전공서적은 단 2권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학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대출순위 30위권 내에 고려대는 20권, 서울대 18권, 건국대 15권, 경희대 14권 등 소설류가 절반을 훨씬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주대도 5종의 무협소설이 10위권내에 들었다. 한양대 도서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경향은 한국 대학생들의 전공·교양서적에 대한 기피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대학 도서관이 청소년들이 드나드는 만화방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기초 신입회원을 공개 모집한 각 대학의 동아리들도 희비가 엇갈렸다. +어학관련 동아리와 컴퓨터동아리, 스포츠동아리에는 1백명이 훨씬 넘는 신입생이 몰려 행복한 고민에 쌓였던 반면 사회과학동아리, 독서동아리, 봉사동아리에는 10명도 채 안돼 울상을 지었던 것. 실제로 한양대 77개의 중앙동아리 중 컴퓨터동아리 회원은 2백명이 넘었다. 전체 동아리 회원의 10%에 이른다. 영어동아리 「HERA」도 1백명이 넘는 신입생이 지원해 +성황을 이뤘다. 반면 독서동아리 「에르디아」에는 10여명의 신입회원이 +지원하는데 그쳤다. 이같은 상황은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봉사동아리 「젊은 새이웃」은 7명, 한국외대 「Y,R,C」는 10명의 회원을 모집하는데 머무르는 등 학술·봉사동아리들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3D 직종’으로 대표되는 학생회와 학보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각 +대학 학생회는 함께 일할 간부를 모집하기도 하지만 지원자가 없어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일부 학보사는 5명도 채 안되는 인원이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수년전부터 나타난 캠퍼스의풍경이지만 90년대 중반 들어 틀에 얽매인 조직과 힘든 일 기피증, 개인주의가 극에 달했다는 반증이다. 개인주의의 심화는 심지어 대학가 범죄로까지 어어지고 있다. 최근 연세대 원주 캠퍼스 기숙사에서는 잠긴 문을 뜯고 노트북과 현금을 훔쳐가는 대담한 범죄행각이 발생했다. 각 대학 동아리방에서의 도난·분실사건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컴퓨터를 비롯 음악동아리의 음향기기, 의류 등 돈 되는 물건은 남아나는 게 없다.

연세대 김모군(건축공1)은 “고교시절 가졌던 대학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다”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런 대학이라면 고등학교와 다를 게 뭐냐며 우리들은 고교 4년생이라고 한탄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