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2001년 일본 정부의 야심찬 계획으로 세워진 오키나와 과학기술연구원(OIST).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휴양지에 위치한 오키나와 과학기술연구원이 뇌과학 분야에서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뇌모델링 분야(Computational Neuroscience)다.

이들은 짧은 기간 동안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빙해 연구팀을 꾸리고 ‘시상 모델링(Thalamus modeling)' 등 몇몇 주요 연구주제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년 전, 오키나와 과학기술연구원의 연구책임자를 맡고 있는 겐지 도야 박사가 우리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도 조만간 뇌과학연구원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자랑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너희 연구소는 색깔이 뭔데?"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신경과학의 전반적인 분야를 다루면서 치매, 파킨슨병 등 의학적인 응용도 가능할 수 있도록...”이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뇌과학 분야가 워낙 광범위한 만큼, 새로 세워질 뇌연구소는 색깔 있게 특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조언을 들려줬다. 지난 5년간 오키나와 과학기술연구원도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다고 하면서.

최근 한국뇌과학연구원 설립이 뇌를 연구하는 한국 과학자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1998년부터 시행된 뇌연구촉진법 덕분에 우리나라에 뇌과학이 자리 잡게 된 지 벌써 10년. 이제 2기로 접어든 뇌과학 연구 도약시기의 핵심은 한국뇌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뇌연구자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국내 뇌과학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뇌과학연구원이 ‘또 하나의 정부출연연’으로 그치지 않고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연구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또 뇌과학 전 분야를 다루려고 하지 말고 특정분야에서 빠른 시일 내에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후 점점 분야를 넓히는 전략이 유효하다. 게다가 20년 후쯤에는 정부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재정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뇌과학의 응용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국뇌과학연구원은 뇌과학 분야에서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용기 있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무슨 응용연구를 하든, 신경과학의 기초분야는 반드시 연구돼야겠지만, ‘신약개발’의 허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나라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는 IT분야나 공학분야와 접목해 뇌과학분야에서 새로운 분야를 ‘창출’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좀 더 과격하게 말하면, 건축이나 미학, 경제학, 정치학, 윤리학 등과 뇌과학을 접목해 융합시대를 선도하는 연구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위치한 솔크연구소는 신경과학의 세계 선도 연구소다. 최근 이 연구소는 신경과학과 건축을 접목한 신경건축(Neuroarchitecture)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고 연구에 주력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들의 목표는 공간이 인간의 인지적 사고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보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천장의 높이를 얼마로 해야 할 것인지, 치매 환자가 요양하는 곳은 어떻게 설계돼야 그들의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 초등학교 교실이 어떻게 디자인돼야 학생들의 집중력이 높아지고 창의적인 사고가 배양될 것인지를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경계에선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쪼록 한국뇌과학연구원이 대뇌 연구를 중심으로 수많은 학문들과 섞이면서 ‘세계 최고의 융합 연구소’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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