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학 현실을 볼 때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는 구호로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에 역행하는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공과대학 중점지원,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 지원, 지방대학 특성화 지원 등 각종 국고지원 사업이다. 이 사업들은 차등적인 국고지원을 통해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했으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중시켰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공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학부제의 경우 학문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등 대학가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서울 모 대학의 경우 발전계획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인문사회 분야의 일부 학문을 ‘영세학문’으로 분류하여 홀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학정책이 겉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대학교육 정책가들의 +일관성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학자나 교육행정가를 막론하고 +대학정책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그것을 일관되게 견지하려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며 “이는 정권이 바뀌면 대학정책도 바뀌는 상황이 +거듭돼 오면서 정책의 노하우가 축적되지 못했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는 대학정책의 최고 부서인 교육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교육부는 최근 대학에도 초·중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대학운영위원회를 도입할계획이라고 밝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교수, 학생, 학부모, 지역인사 등이 참여하는 대학운영위원회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대학운영과 교육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구라는 점에서 도입 자체만으로도 매우 고무적인 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올 상반기는 제도 마련을 위한 관련자료 수집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사학 재단의 반발과 관련법 개정 등 산적한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하반기 실시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모 교수는 “초·중등학교에서도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사전 연구도 하지 않고 무작정 대학에 도입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대학정책이 이렇듯 졸속으로 이뤄지는 이유는 정책 담당자들이 임기응변식으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정책은 국내 대학의 75%를 차지하는 사립대에서 보다 극심하게 파행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사립대에서 ‘대학 자율화’는 곧 ‘재단이사장의 자율화’로 오인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일부 사립대의 경우 대학 자율화를 +주장하며 교육부 등 관계당국의 기본적인 관리·감독 기능에 대해 반발하기도 한다”며 “대학 자율화는 교수, 학생, 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의 자율화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행 사립학교법은 사립대의 대학정책이 파행을 겪는 주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단이사장에게 대학운영의 전권을 부여하고 있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대학정책이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는 ▲총장에게 교수 임면권 부여 ▲이사장 친인척의 이사회 참여 제한 ▲법인회계 공개 의무화 등으로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육계 일각에서는 대학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내 실정에 맞는 학문정책이 우선적으로 수립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교협」의 강치원 교수(강원대 사학)는 “국내 대학에는 아직까지 +학문의 생산과 발전, 개혁을 위한 학문정책이 없는 실정”이라며 “죽어가는 대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 차원의 학문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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