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조용한 목소리의 성찰적 인문지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지식인이 연예인처럼 돼서 소리를 지르고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풍토죠"
중도 성향의 인문사회과학 계간지 '비평'을 내온 출판사 '생각의나무' 박광성 대표가 2009년 여름호(통권 23호)를 끝으로 '비평'을 무기한 정간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진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박광성 대표는 "재정적 적자가 있었지만, 그것은 정간의 핵심 이유가 아니다. 상업적 손해를 각오하고 시작했으며 손익분기점은 생각도 안 했다"면서 "중요한 특집을 기획해도 언론에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진보적 담론을 만들어내는데 한계를 느낀 것이 정간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털어놨다.

박 대표는 "우리 사회는 이념과 주장이 과잉돼 있으며 좌파든 우파든 다른 생각을 용납 안한다"고 꼬집으면서 "'비평'에 참여한 학자들은 성향이 다양하지만 '이념이 아닌 사실, 주장이 아닌 성찰'이란 지향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잘못이 있어 자책감도 느낀다"면서 "대학에서 돈 벌 수 있는 분야에만 관심이 몰리고 인문학이 소멸하는 것과 같이 인문사회 계간지의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대표는 복간에 대한 계획을 묻자 "회사를 추스르고 지식인 사회의 상황도 봐야한다"고 말을 아끼면서 "버틸 수 있는 자본과 참여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있다면 '비평'의 논지를 발전시키고 성숙시킬 잡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평'은 1999년 반 연간호로 창간했다가 계간지로 전환해 2004년까지 12권을 발행했고 2년간 정간했다가 2006년 가을 복간했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편집인으로, 최장집(고려대)ㆍ장회익(서울대)ㆍ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를 편집자문위원으로 하고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가 편집주간, 권혁범(대전대)ㆍ박명림(연세대)ㆍ윤평중(한신대)ㆍ임지현(한양대) 교수 등 중견학자들이 편집위원을 맡아왔다.

광고를 싣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웠고 성찰적 인문지를 표방하며 2000년대 초 세계화 특집과 9.11테러 특집 등을 통해 이슈를 만들어내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비평'은 발행부수가 창간 때부터 1천부 가량이었고 그 가운데 정기구독자는 300부에 그쳐 한해에 1억원 가량 적자가 누적되는 구조였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출판시장의 어려움과 함께 인터넷 담론의 지배력이 커진 상황에서 고급지성지를 지향하는 계간지가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05년 '당대비평'과 지난해 '사회비평' 등 대표적 계간지들이 정간한 데 이어 '비평'까지 정간하면서 종합 계간지는 '창작과비평', '황해문화', '문화과학', '시대정신' 등만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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