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섭 본지논설위원·광주보건대학 기획실장

“하나의 유령이 지금 전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그 유명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등장하는 문구다.

이 유령은 거의 한 세기 반 동안 전 세계를 떠돌며 헤아릴 수 없는 피와 땀을 요구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바로 투입되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키고 나서야 그 어이없는 실체를 드러내는 ‘유령놀음’의 본질이다.

희한하게도 어느 조직·사회·국가를 막론하고 꼭 한두 가지의 유령놀음에 빠지곤 한다. 최근 우리 사회도 모든 이슈거리를 일거에 잠재우는 지독한 유령놀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4대강’ 유령과 ‘세종시’ 유령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두 가지 유령이 당장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파 간의 이해와 기싸움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적어도 여름까지는 싫든 좋든 두 가지 유령을 등에 업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유령굿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유령놀음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초기 화두는 단연 선진화였다. 우리 사회 곳곳에 산적해 있는 장애요인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선진국 진입에 필요한 요소는 과감하게 도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3년째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보면 그러한 소박한 희망은 피안의 세계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정부에서 추진해야 할 수많은 선진화 과제는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겨져 또 다시 다음 정권 국정운영 보고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는 와중에 위기는 어느 순간 성큼 다가왔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이 83%에 이른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격히 높아진 수치다. 게다가 학령인구 감소세는 보는 사람이 겁날 정도로 줄어든다. 이 모든 일이 바로 코앞에 닥친 현상들이다.

그런데도 정작 대승적인 정책은 어디서에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논의조차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교육 선진화에 담겨져야 할 궁극적인 내용들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놀이판’ 자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 각계각층에서 연구·논의되는 각종 교육계의 성과물들을 통합해 끊임없이 이슈화해야 한다. 어떤 명분도 기득권도 다 버려야 한다. 오로지 이 지독한 무한경쟁시대에 가장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적의 교육 솔루션이 무엇인지, 이것만을 그 준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놀이판을 만든 다음에는 교육선진화라는 그릇에 담아 내야 할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 유령놀음인 줄 뻔히 알면서도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거기에 재미있거나 자신들의 이해와 관련되거나 하는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놀이판에서도 우리나라 사회구조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의제들을 볼거리로 제공하면 어떨까. 고등교육기관의 다양화 방안, 동일한 교육기관 내 전공과 직무에 따른 수업연한 자율화, 고등교육기관 재정지원 체제의 확립방안 등의 주제들이 좋은 메뉴가 될 수 있다.

덧붙여 시대 흐름에 맞추어 글로벌 인력양성을 위한 다양한 국제교류, 해외봉사, 어학연수, 해외인턴십 등도 훌륭한 볼거리가 될 것이다. 더욱이 그 주제들이 현 정부가 강조하는 경쟁과 실용의 틀 안에서 끊임없이 개발된다면 교육놀이판은 유령놀음보다 오히려 관심을 끌 수 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유령 같은 이슈에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에도 그래 왔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래 왔다고 합리화하기에는 그 기회비용이 너무나 크다. 특히 이 시대에 교육선진화라는 화두를 포기하면 얼마 가지 않아 그 몇 십 배, 몇 백 배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이 유령놀이판을 벌이는 옆에 또 하나의 판을 만들자. ‘백년지대계판’이라고 해도 좋고 ‘실용교육 선진화판’이라고 해도 좋다. 볼거리 메뉴를 다양하게 만든다면 유령놀이판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때 대통령을 모셔다가 진짜로 신명나게 놀아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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