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 좌우되면 어떤 논리도 설득력 없어

언젠가 모임에서 평소 교육정책 입안에 깊이 관여해 온 교육 전문가로부터 들은 고백이다. “대학평가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고 공식석상에선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인데, 집에서 아내가 ‘당신이 교육현장을 알기나 해?’라고 한 마디하면 꼼짝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교육분야만큼은 온 국민이 전문가 수준의 일가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생생한 실례가 아니겠는지.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 곧 가문의 영광이자 가족의 성공 지표로 직결되는 현실에서 교육정책의 변화는 아무리 미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할지라도 자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우선 내 자식에게 유리할 것인지 불리할 것인지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데 너나없이 혈안이 돼 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대다수 교육정책은 발표 즉시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되게 마련이고, 해당 정책을 놓고 즉각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대립되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그런 와중에 주요한 대학 관련 정책을 두고 교과부와 대학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굵직한 사안만 해도 졸속 시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입학사정관제 실시, 더불어 정치논리에 밀려 결국 ‘나눠먹기식’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약학대학 증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기존의 정형화된 대학입시제도 아래서는 창의적 잠재력을 갖춘 인재발굴이 불가능하기에 이의 한계를 보완하는 동시에, 사교육 일변도에서 벗어나 공교육의 가치를 다시금 부활시킬 수 있는 특효약의 하나로 큰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도입 초기엔 사회 저명인사를 입학사정관으로 위촉해 장래성 높은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 데 성공한 스토리들이 언론매체를 장식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선 성급한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과 입학사정관제로 인한 입시 비리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교과부의 규제 및 감시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어느새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사교육 시장이 소리 없이 번져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가 하면, 입학사정관 개인 차원의 부정과 비리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약대 증원 또한 '2+4'의 선진국형 학제 도입으로 인해 3학년부터 약대 입학이 결정되면서, 전 국민의 보건을 담당하는 의약행정의 혼란과 더불어 약대 편입학을 위해 전국의 대학 1·2학년생의 대이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교과부는 25개 대학에 약대 증원을 결정했다.

교과부의 입장, 복지부 ·대한약사회의 원칙, 약대 보유 대학과 유치 경쟁대학 간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에서, 처음엔 대학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조정한 연후에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겠노라 당당히 밝혔던 교과부가 결국 국민의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에 따라 하향식 의사결정을 감행했다는 후문이다.

교과부와 대학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뿌리내린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테지만, 교육환경의 변화 속도에 발맞춰 두 주체 간에도 성숙한 관계 설정이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대학을 향해 전면적 자율을 허용하기 어려운 교과부의 입장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 및 경우를 상정한 후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제와 간섭의 칼을 빼어드는 관행은 필히 벗어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진사회로 갈수록 채찍의 부정적 효과보다는 당근의 긍정적 영향이 크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기계적 결속사회일수록 ‘제재(sanction)성 법률’이 발달하고 유기적 결속사회일수록 ‘보상적 법률’이 주효하다는 점 또한 재론의 여지가 없다.

모든 대학을 향해 일률적 규제 및 강압적 간섭을 하기보다, 대학별 특성에 주목해 일정한 자율권을 부여해 준 다음, 그로 인한 성과를 기반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해 주는 것이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데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단, 대학 스스로 자율에는 응분의 책임이 따름을 인식하고 대학을 향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을 기억한다면 두 주체 간 성숙한 파트너십 구축도 먼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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