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불합치 미디어관련법, 치유 시급

한국 사람들이 빠르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여름철 올림픽 400미터 자유형에서 한국의 젊은이가 물 속을 가장 빨리 헤엄쳤다. 겨울철 올림픽에서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얼려진 빙판 위를 가장 빨리 달렸다. 스피드스케이팅 부문에서만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쇼트트랙 빨리 달리기의 경우 남녀 구분 없이 전 종목의 금메달을 싹쓸이 못하면 외려 땅을 치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빠르기도 금메달 감일까?

‘날치기’ 혹은 ‘번개치기’라고 표현하든 국회가 미디어 관련법을 표결처리한 데 걸린 시간은 ‘바람 휙’이다. 방송법안은 지난해 7월 22일 오후 3시 55분 국회의 디지털 본회의장 ‘회의진행시스템’에 입력됐다. 사전에 수정안에 관한 서면 배포나 구두 설명이 없었으므로 국회의원들은 고작 모니터를 통해서만 법안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3분 후인 3시 58분 곧바로 표결이 선포됐다.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회의진행시스템에 신문법안이 입력된 시간은 같은 날 오후 3시 49분 27초였다. 33초가 지나자 신문법안 표결이 시작됐다. 필자 같은 보통 사람이 숨 가쁘게 걸어서 100여 미터도 갈 수 없는 시간, 육상 400미터 세계기록 보유자가 기껏 300여 미터 정도밖에 달리지 못할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국회는 처음 본 수정법안 하나를 가볍게 처리했다. 마칼바람 휘몰아치듯 두 법안은 잽싸게 아퀴지어졌다.

마르고 닳도록 읊조리고 칭송해 온 ‘속전속결’의 가치가 빨리 달리기 대회의 금메달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법을 세우고 세워진 법을 해석하는 데도 반영됐다. 입법부는 얼마나 빨리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가를 실증적으로 시연해 보였다. 헌법재판소 역시 국회가 보여 준 속전속결의 역량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이들 법안을 다룬 권한쟁의심판사건에서 헌법재판소 일부 재판관은 방송법안을 검토하는 데 주어진 3분, 신문법안을 훑어보는 데 부여된 33초간의 시간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표결권을 침해할 정도로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하긴 두 법안의 처리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은 회의장에 없는 다른 의원의 버튼까지 눌러 주는 아량과 여유를 부렸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처리하지 못할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헌법재판소 발표에 따르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조처가 취해지지 않은 법 조항이 무려 35건에 이른다. 그 중 12건을 차지하는 ‘헌법불합치’ 위헌 결정의 경우 특정한 시한을 정해 주고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개정 시한을 경과하면 효력을 잃게 되는데 방송광고판매제도와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른바 ‘미디어랩’ 관련 법규다.

헌재는 2008년 11월 27일 지상파텔레비전의 방송광고 판매를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실질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것은 직업수행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면서 옛 방송법과 현행 방송법령의 4개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언했다. 다만 규제의 근거법령이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기로 하고 400여 일 후인 2009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라고 선고했다. 방송사업자와 광고주, 광고회사, 시청자 모두 그 입법 처리를 초조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국회는 2009년 마지막 날까지 입법상의 흠결을 치유하지 않았다. 법의 공백상태가 지속됐으나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도 매조지가 안 됐다. 4월 국회가 열리면 그때 가서 다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33초, 길어야 3분 만에 법안을 표결처리할 수 있는 국회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집시법상의 야간옥외집회금지 규정 역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받고 올해 6월 말까지 치유하도록 국회에 넘겨져 있다. 9개월의 치유 기간 중 벌써 절반을 까먹었는데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또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가을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사건에서 국회가 처리한 두 법안의 무효를 확인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미디어법 처리과정은 국회의원들이 충분히 심의하고 표결할 권리를 침해한 위법이 있었다면서 국회가 그 위법성을 스스로 치유해 줄 것을 요구했다. 법제처장과 헌재 사무총장의 발언으로도 이 점은 확인됐다.

국회는 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나 혹은 국회 스스로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관련법 처리에 늑장을 부려선 안 된다. 정말로 국회의 ‘실력발휘’가 절실히 필요할 때다. 제대로 고쳐 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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