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엄숙주의 거부하는 박홍규 영남대 교수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너무 유명해서 읽지도 않는다는 셰익스피어.

봄비 내린 4월의 어느 날, 인사동에서 만난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셰익스피어라는 우상을 과감히 파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쓴 일련의 저작들은 고전·우상이라 불리는 것에 균열을 낸다.

‘(셰익스피어를) 문학소녀의 화장품 곁에 처박아 두지 않고 즐거운 독서와 토론의 세계로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중략)… 특히 학자들은 영미인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셰익스피어라는 우상을 과감히 파괴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의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책머리 내용이다. 그는 꾸준히 인물·사상을 재조명, 재평가하는 책으로 대중을 만났다. 그는 학문이나 예술을 신비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대중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학문풍토는 학문과 일반인이 만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학문 간 크로스오버(crossover)하는 것도요. 폐쇄적 논문 업적 중심주의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죠. 학문하는 사람들이 전공중심주의에 빠지지 않고 책임감을 갖고 좀 더 현실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이어 박 교수는 웃을 수 없는 농담을 건넨다. “‘교수들의 연구 논문은 2.6명이 읽는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쓴 자신과 그 밑의 조교가 읽고 그리고 누군가 0.6명이 읽는다는 거죠. 물론 그중 의미 있는 논문도 있겠지만, 사소한 이야기에 외국문헌을 잔뜩 인용해 복잡하게 구성한 연구논문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회의가 듭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대학에서 교수를 평가할 때 공식적 연구만을 중요시한다. 연구업적은 SCI(과학기술논문색인) 혹은 학진(한국학술진흥재단) 이상에 등재된 논문이어야만 한다.

“제가 쓰는 책은 대부분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대학교수의 연구업적이라는 것은 아주 세밀한 자기 전공분야의 것이어야 하죠. 하지만 대학이 교수를 다양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작업이 학문적으로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밤늦도록 연구실 불을 밝힌 채 연구업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을 생각하는 교수들도 있다.

“교수들은 업적평가에 경쟁하고 학생들은 취업에 매달리고…. 업적에 따라 교수에게 경제적 차등, 진급의 차등을 두는 것도 문제죠. 논문을 잘 못 쓰면 월급도 못 받고 진급도 못 한다는 압박이 있습니다. 대학의 구조적 문제죠.”

박홍규 교수는 그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 혹자는 그의 삶을 ‘슬로 라이프’로 명명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그 흔한 휴대전화도 운전면허증도 없다. 공식적 자리에 나서는 것도, 서울에 올라오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내 연령대 교수라는 남자들은 굉장히 바쁩니다. 각종 회사·관청과 관련돼 있고 동창회·단체, 학교 보직 등…. 심지어 골프회·테니스회처럼 운동도 몇 가지씩 해요. 그렇게 사는 게 내 정도 나이의 교수들이에요.”

 

박 교수는 잘나가던 법학과 교수직을 버리고 2년 전 교양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영남대가 로스쿨 인가를 받은 다음이다. 다른 교수 같으면 대학원 교수가 된다고 좋아했겠지만, 그는 법과대학이 더욱더 치열한 고시 경쟁처가 되는 것이 싫었다. 정년까지 본인이 좋아하는 교양 공부를 가르치고 싶었다.

“대학에서 교육받았다고 하는 학생이 아주 단편적 전문지식을 아는 것보다 한 사람의 훌륭한 시민·사회인·교양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남은 8년, 그가 매진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이에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사는 것이 목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인물 평전도 몇 권 더 쓰고, 번역할 가치가 있는 외국 서적은 열심히 번역하고….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인물이나 사상을 재조명, 재평가하는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고 대한민국 지성계에 양심적 발언을 해 온 박홍규 교수. 대중에게 내밀 그의 또 다른 악수가 기대되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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