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유, 언어, 제도 그리고 새로운 물음과 해답을 모색해야

“제도적 권위, 개념적 교리, 종교적 가르침을 빙자한 정치적 권력 등을 어떻게 제거하는냐가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유, 새로운 언어, 새로운 제도 그리고 새로운 물음과 해답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난 17일 종교학자 정진홍과 본지 김우종 주필이 자리를 같이 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그 끝을 보이지 않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인류에게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고 삶의 방향타가 될 수 있는 종교, 신앙의 현실적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오늘날 현재한 종교들의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우종 = 종교학이란 어떠한 학문인가요? 정진홍 = 종교인이 아니면서 종교를 연구한다면 종교인에게 이것은 스캔들입니다. 실증되지 않은 현상인 종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면 학자들에게 역시 이것은 스캔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학은 그러한 위치에 있는 학문이죠. 종교학은 종교와 학문의 경계에서 첨예한 긴장을 유지하며 종교라고 일컬어진 삶의 현상을 승인하고 인식하기 위한 모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 한국의 종교학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나요? 정 = 한국에서의 종교학은 특정 종교를 연구하는 교리학이나 신학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오해로 어려움에 직면하곤 합니다. 한국종교 현실에 대해 세가지만 간추려 말씀드린다면, 우선 우리 사회의 종교들이 독선과 배타, 아집, 나르시시즘 등의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종교자체가 범하는 위선인데,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스스로 부적합한 행동을 예사로 하고 종교자체의 자기성찰을 게을리하면서 사화(私化)된 종교들이 범람하고 있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종교는 논의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정치나 경제만큼 그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인식을 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래야 종교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김 = 종교와 오늘날 인류의 구원 문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 어떤 종교든 가르침과 제도화된 종교의 힘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습니다. 이 간극을 넘어설 수 있다면 모든 종교의 정신은 모든 인류의 구원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제도적 권위라든가 이를 하나의 의미체계로 고착시킨 개념적 교리, 종교적 가르침을 빙자한 정치적 권력 등을 어떻게 제거하는냐가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유, 새로운 언어, 새로운 제도 그리고 새로운 물음과 해답을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김 = 종교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학문적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십니까? 정 = 종교현상을 인식하기 위한 새로운 범주가 설정되고 새로운 언어가 출현함으로써 종교를 재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학은 인류의 역사나 문화를 새롭게 되묻는 자리를 겸허히 지키며 스스로 자신의 고뇌와 인식을 발언해 나갈 것입니다. 김 = 미국이 이라크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가 하면 반전시위가 전세계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기독교적 신념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정 = 사유나 판단, 행위는 인간 스스로가 선택한 종교적 신념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부시나 후세인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념적이고 현실적인 기제(메카니즘)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누구의 종교가 무엇이고 어떤 신을 믿느냐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김 = 특히 미국은 이번 공격의 정당화를 위해 ‘신’을 빌어 온 것 같습니다.
정 = 빌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것을 ‘신을 위해서’라고 하는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으로 생각할 겁니다. 김 = 신을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면 전쟁이 겉잡을 수 없게 될 위험이 더욱 크겠군요. 정 = 정치인들이 누구입니까? 정치-경제적 손익 계산을 미리 다 해봤겠죠. 문제는 어떤 결정이든 정당화 요구로 인해 근원적인 답변거리를 찾게 되고 결국 종교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김 = 이번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이슬람과의 종교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정 = 종교는 역사적인 문화현상인 동시에 현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전쟁은 정당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종교적 신념이나 특정 이념을 동원하곤 하는데, 이번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로 가리워질지 모르나 정치-경제적인 차원에서의 이권전쟁이라는 편이 맞습니다. 김 = 이스라엘과 이번 이라크 전쟁과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정 = 무관하지는 않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민족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인 것이 종교적 문제로만 비쳐지는 것, 이렇게 진실이 은폐되는 것은 경계해야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 = 기독교인들 모두가 종교적 신념에서 이라크 공격을 감행한 부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기독교인 중 일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정 = 그렇죠. 종교, 신앙이라는 것은 일종의 스펙트럼이 있다고 보거든요. 부시는 그 중 극우쪽의 근본주의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김 = 미국 내에는 부시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보십니까? 정 = 그렇게 보아야 할 겁니다. 이번 공격이후 지지도가 상승했쟎습니까? 주일마다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서 성경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하는 소시민들이 미국내 상당히 많거든요. 문제는 이들은 선악의 이원적 논리를 너무 쉽게 적용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들은 부시를 지지할 겁니다. 김 = 선악의 기준이라는 것이 해당 종교의 신이 뜻하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보자면 기독교는 구약성서를 통해서만 보더라도 이교도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했거든요. 정 = 팔레스타인 유대민족의 역사를 보면, 제대로 문화를 펼쳐보거나 강건한 국가로서의 경험없이 늘 강대국에 치어 살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의 종교라는 것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종교가 되었던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특성이 필연적인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교와는 분명 다르죠. 김 =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정 = 그러한 피해자로서의 역사속에서도 선(善)과 사랑을 강조하는 이상(Ideal)과 그러한 피해자로서의 역사인식에 의한 현실적인 보복감, 복수심은 역설적으로 공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신정론(伸正論:신은 정당한가?)의 갈등은 신앙사회에서 고통이죠. 그와 같은 공존의 사실을 역설적으로 간과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에서는 ‘신은 정의롭다 혹은 그렇지 못하다’가 아니라 ‘그런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는 현상 속에서 우리가 신의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하느냐’ 하는 것으로 즉 신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됩니다.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고통의 의미 발견을 통해 고통이 긍정적 리얼리티가 된다는 것과 통하는 말이죠. 김 = 이번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상당히 복합적이면서도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 =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은 인류가 일련의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면서 축적해 가는데, 여과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것 즉 결국 증오같이 강력한 것들만 남기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본에 대한 증오가 남아있듯이 말입니다. 김 = 이번 전쟁과 같은 것이 지속적으로 증오를 더 커지게 하고 축적시켜서 인류의 비극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 = 그렇죠. 증오를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정황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죠. 김 =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입니까? 정 = 세상이 어쩔 수 없이 물질주의(Materialism)로 변화되어 간다면 그러한 가운데 좀 더 합리적인 원칙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나 선(善)을 가지고 말할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이것을 구조화해야 한다는 말이죠. 분배나 평등, 정의의 원칙이라는 것이 이념적인 슬로건이 아니라 현실정책으로 나와줘야 하고 정책이라는 것이 결손부문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이것을 사실대로 제시하면서 그럼에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야 하고 또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합리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훼손되지 않는 영성(spirituality)이 있다는 걸 제시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이 합리적으로 자리잡아 나가면서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영성(spirituality)을 새롭게 강조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는 모든 종교는 문화적, 시대적 특성에 따른 것이므로 어떤 종교든 인간의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질(matter)과 정신(spirit)을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분리시키는 것은 근원적인 오류입니다. 이들은 상호보완적인 관계거든요. 물질에마저도 정신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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