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주영] 역사와 오늘, 살아있는 ‘민중’ 정체성 자각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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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힘, 역사 속에서 명분과 근력 드러나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저는 민중과 군중에 대한 해석을 좀 달리하고 싶습니다. 군중은 일사불란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집합체의 힘이 정치적 흐름이나 색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띱니다. 이들은 분위기에 휘둘려 영속성을 유지하기에 힘든 일과성에 그치거나, 혹은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에 혼돈을 야기시킬 수 있습니다.” 역사 속의 ‘민중’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객주>의 저자, 작가 김주영을 본지 김우종 주필이 만났다. 촛불 시위와 반전 운동 등 대중의 움직임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민중’의 사회적 정체성과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우종 =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에 공병대와 의무대 등 7백명의 병력 파견 의사를 공표하자 시민들이 연일 거리시위를 펼치는 등 거세게 반대 의지를 표출한 바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민중의 힘입니다. 노무현이란 새롭고 젊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부터가 그렇죠. 민중이란 어떠한 존재입니까? 김주영 = 제가 내심 기리고 있는 민중이란 대상은, 사회적 계층이나 주의 혹은 사상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이론적인 당위성을 획득하고 있지도 않고 상념으로써도 농익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소박한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봐야할 겁니다. 그저 어떤 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거나 그렇게 살다가 과거로 사라진 숱한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속 편한 얘기겠지요. 김우종 = 사회 일반에 통용되고 있는 민중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김주영 = 글쎄요. 특정한 정치 지배자나 소수의 영웅이 주역이 되어 한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볼 때, 민중은 우직하거나 혹은 집단으로써의 지속적인 응집력이 결여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대항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소외되어 있거나 이렇다할 사회적 추진력에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지칭할 수도 있겠지요. 이들도 다름아닌 민중입니다. 물론 이런 고답적인 분류가 현대 사회에서 바라보는 민중의 정체성으로 정의되지는 못할 겁니다. 김우종 = 김 선생의 작품 속에서의 민중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김주영 = 제가 쓴 <객주>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우리가 빚어내고 있는 도도한 역사의 행간에서 뚜렷한 구두점도 찍지 못하고 그대로 속절없이 배설되어 버린 존재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름도 없고, 성도 없고, 어떤 역할을 하다가 과거로 묻혀버린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역사 그 자체뿐만 아니라, 기록에서조차 그들의 존재가치는 너무나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미약했지만, 이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제 작품 속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가 겪은 수많은 민란과 봉기와 의거를 떠올리신다면, 민중의 힘이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명분과 근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을 가난하고 힘없는 집단으로 예단하기는 오늘날에 와선 어렵다고 보아야 겠죠. 김우종 = 오늘날의 민중이 지닌 무서운 힘을 최근에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월드컵 경기의 응원전, 광장의 촛불시위,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 등 그들은 확실히 역사를 움직이는 확고한 실체라고 봅니다. 김 선생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주영 = 집단성에는 이를테면, 군중이라는 요소가 없지 않습니다. 월드컵 응원이나 평화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무리에도 이러한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저는 민중과 군중에 대한 해석을 좀 달리하고 싶습니다. 군중은 일사불란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집합체의 힘이 정치적 흐름이나 색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띱니다. 이들은 분위기에 휘둘려 영속성을 유지하기에 힘든 일과성에 그치거나, 혹은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에 혼돈을 야기시킬 수 있습니다. 민중과 군중을 동일시 하다보면, 침묵하거나 그 집합에 합류하기를 유보한 대중들은 민중에서조차 소외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오늘날의 민중이 역사를 움직이는 확고한 실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김우종 = 오늘의 민중과 지난날에 김 선생이 그려나갔던 민중은 어떤 점에서 동일하고 또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주영 = 제가 소설에서 그린 인물들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이름도 성도 없이 사그라지고 말았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소설 속에 도입하여 빼앗기거나 아예 있지도 않았던 이름을 수색하여 붙여주고 그들의 역할에도 부표를 붙여주겠다고 노력한 것입니다. 우직하고 소박하다는 것과 현명하고 통찰력을 가졌다는 것이 과거의 민중과 오늘의 민중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분법으로썬 딱히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우종 = 김 선생의 소설에 등장하는 민중들을 민중의 ‘실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김주영 = 보통 소설은 거짓말이라고 말들 합니다. 그리고 그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거짓말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요. 그러나 한 조각의 파편에서 그 시대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읽어낼 수 있는 고고학을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고학은 증명이 전제된 과학적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듯 소설 역시 거짓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말을 거짓말처럼 꾸며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있었음직한 사실들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소설은 사실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소설의 내용이 일반적인 시각에서 너무 황당하다거나 허무맹랑하고 우연이 지나치게 남발될 때 독자들은 가차없이 그 소설을 평가 절하해 버립니다. 반면, 고고학에서 증명이 그 가치를 더하는 것처럼 소설 속의 사실성은 작품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실체를 찾아가는 데 저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그만큼의 사실성을 얻었다고 봅니다. 김우종 = 김 선생은 작품을 통해서 과거의 민중 문화를 재생 복원시켜 왔습니다. 그것은 학문적인 면에서도 매우 소중한 작업이라고 봅니다. 그 중에서도 잊혀져가는 언어의 발견과 복원 작업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의 우리 민중 속에서 우리의 언어는 어떤 모습입니까?
김주영 = 소설을 쓰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역사 서적이나 논문들을 읽어 왔습니다. 느낀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역사 기술들이 거의 천편일률로 정치사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계승과 이동의 문제, 혹은 왕조사에만 무게를 두었죠. 일반 대중 혹은 백성들의 생각과 생활사에 대한 기술은 상대적으로 빈약했습니다. 이런 역사 기술방법이 지배적 가치관을 형성해 왔다는 것은 우리들의 의식구조를 보수적 편향으로 고착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객주>를 쓰기 시작하면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내로라하는 사학자들은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던 민중사를 복원해 보자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김우종 = 그와 같은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김주영 = 집필에 착수하게 되면서 솔직히 많은 벽에 부딪쳐야 했습니다. 우선 자료부터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러나 일단 쓰기로 작정한 이상, 발품을 팔아가며 전국을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을 만큼 누볐습니다. 하지만 수확은 항상 기대 이하였습니다. 한마디의 서민 언어를 찾아내는데 제 나름대로 숱한 각고를 겪었죠. 설혹 찾아냈다 하더라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없어서 노심초사했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너무나 빈약한 저의 작가적 소양과 기량을 탓하기도 했지만 작품을 완성해 놓은 지금 혼자서 그나마 이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우종 = 우리의 남북관계에 있어서 앞으로 우리 민중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김주영 = 4년 전에 북한을 한 보름 동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른바 민중의 힘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생겼습니다. 북한에서의 민중들의 행동양태는 우리들이 흔히 쓰는 일사불란하다는 평가를 듣기에 참으로 적절했죠. 그 일사불란함에서 심리적으로 짓눌리고 위축되는 거대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민중이란 이름으로 뿜어내는 결의나 의사표현은 민중의 이름으로 결속되거나 정제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민중 그 자체로써 매우 자발적이며 순수한 독립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권력이나 정치적 의지에 조종된다거나 부합해서 움직이는 것은 군중일 따름이지 민중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서 일사분란한 다수의 의견은 배후의 힘에 의해 지시되고 조종되는 것 즉 조작된 것입니다. 그곳에는 민중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김우종 = 그렇다면 남한은 어떻습니까? 이번 이라크 파병 반대와 반전운동에 나섰던 시민들을 민중으로 봐도 될까요? 김주영 = 다 아시겠지만 우리도 과거 한 때는 소위 집권세력에 의한 배후조종으로 잘못된 여론에 휩쓸리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파병 반대 시위나 반전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자발적이며 순수한 독립성을 가진 일반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분명히 민중으로 볼 수 있죠. 김우종 = 민중의 존재를 생각할 때 우리의 미래를 어떤 것일까요? 김주영 = 날아가는 사람의 등에 업혀 가려는 생각, 놀면서 밥 먹으려는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이상,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김주영(金周榮)은 누구인가 1939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작가 김주영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71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 「휴면기(休眠旗)」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 속에서 소외된 인간을 통해 인간의 생존에 대한 회의와 비극을 제시하고 서사적인 문장과 향토색 짙은 언어구사, 토속적 환경 등으로 인간세상을 풍자해 확고한 작가적 세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2년 단편 「외촌장기행(外村場紀行)」으로 ‘소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4년 『객주』로 제1회 유주현문학상, 2000년과 2002년에는 각각 제2회 무영문학상(『아라리 난장』)과 제5회 김동리문학상(『멸치』)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칼과 뿌리』, 『겨울새』, 『새를 찾아서』, 『겨울속여행 』,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홍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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