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생각] 우리 삶이 본성에 정직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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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범신(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칼럼에 박범신은 ‘꽃이 피었지만 어쩐지 아직도 봄이 다 온 것 같지 않은 이상한 2010년 봄’이라 썼다. 봄 같지 않은 날씨도 날씨지만, 봄꽃 같은 젊은 목숨들이 물속에서 떼죽음을 당한 봄이기 때문이다. 박범신 교수를 만나러 가던 날도 바람이 매섭게 부는 이상한 봄의 연장이었다.

“(천안함 사건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근원은 우리가 분단조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민족의 근원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분단조국에 산다는 것은 (젊은이들과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양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박 교수는 대학생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기조차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무한경쟁체계 속에서 학생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그래도 젊은이라면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그리운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합니다.”

그는 유명 작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선생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볕이 좋은 날엔 학생들에게 “나가자”고 말해 야외 수업을 진행한다. 또 축제 때 학생들이 연 주점에 들러 학생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짧은 시를 써 놓고 가기도 한다.

“문예창작학은 감수성을 연마하지 않고는 안 되는 짓입니다. 고답적인 강의만 하고는 작가를 기르기 어렵고, 학생들 역시 모범적인 양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의 이런 지론 덕분인지 올해 신춘문예(조선일보·한국일보·세계일보 등)에 명지대 문창과 학부·대학원 출신이 5명이나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전국 대학 중 최다 배출이다.

그는 소설가로서도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 왔다.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보여주었던 <촐라체>(2008)와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의 삶을 통해 꿈의 수평적인 정한을 이야기한 <고산자>(2009). 그리고 2010년 봄, <은교>를 출간했다.

<은교>는 두 가지 서사가 공존한다. 일흔 살 이적요와 열일곱 살의 은교. 그리고 이적요 시인과 그의 제자 서지우의 이야기다.

위대한 시인이라 칭송받던 이적요, 그는 죽은 뒤 일 년 후 자신의 노트를 공개할 것을 변호사에게 유언한다. 노트에는 ‘적요’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가 열일곱 살 은교를 사랑했으며, 제자였던 서지우와 은교를 두고 연적 관계였으며, 지우를 자신이 죽였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은교의 생물학적 나이는 열일곱 살이지만 사실 이적요가 보는 은교는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관념입니다. 은교는 마흔 살 먹은 여자일 수도 있고, 꼭 여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모호해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은교는 ‘인생에서 정말 그리운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60대 중반의 소설가가 독자와 만나는 방식은 신선했다. 작가는 원고료까지 포기하며 문학동네 홈페이지에 연재하는 방식을 버리고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wacho) 연재를 택했다. 블로그 이름이자 그의 호이기도 한 ‘와초’는 ‘드러누운 풀’이란 뜻으로 그의 작품 <풀잎처럼 눕다>에서 따온 것이다.

“개인 블로그 연재방식이 작가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정 분량을 일정한 시간까지 올려야하는 연재와 달리 개인 블로그에 올리면 한 줄을 올리든, 일주일을 쉬든 상관없습니다. 다른 작가들도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싶거나, 지면이 없다면 나 같은 연재 방식을 시도하겠지요.”

작가는 <은교>를 밤에만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은교>는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본능, 본성이라는 것을 억압하는 체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각자 마음속 고유한 그리움을 돌볼 여유 없이 세상의 보편적 욕망에 따라 살고 있죠. 낮은 몰라도 밤에는 당신이 억눌러 놓은 고유의 본능이나 정체성 같은 것을 해방하라는 겁니다.”

작가의 산문집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중에도 본성에 정직하자는 구절이 나온다.

‘아침마다 칼을 짊어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전사로서의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닐 것이다. 수줍어할 것도 불안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깊은 밤, 어쩌다 잠깨어 불현듯 만나게 되는 본래의 나,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목메어 부르고 있는 그 사랑을 정직하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새봄엔 부디 우리의 본성에 정직해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에 “나의 눈물겹고 뜨겁고 푸른 ‘갈망’의 화두를 일단 접는다. 새 소설이 나를 부르고 있다”고 적었기에 다음 작품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새 소설을 곧 시작 하려 했는데 내 안에 우물이 아직 차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물이 다시 고여야 하지 않겠어요? 이 봄이 가기 전엔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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