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구 한국항공대 총장 "항공우주산업에 한국의 미래 있다"
여준구 한국항공대 총장 "항공우주산업에 한국의 미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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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여준구 한국항공대 총장실에 걸린 문구다. <맹자>에 나온 말로, 유수지위물야불영과불행(流水之爲物也不盈科不行), ‘흐르는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항공대의 발전을 위해 지난 4년 동안 웅덩이를 채우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는 여 총장을 만났다. 취임 후 아시아 최초 국제항공교육인증(AABI) 획득, 국토해양부 항공기술인력양성사업 선정, 울진 비행교육훈련원 선정, 국토해양부 물류특성화인력양성사업 선정 등 굵직한 성과를 낸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대담 : 박성태 본지 발행인


- 임기 말이다.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한국항공대에 오면서 많은 계획을 세웠다. 계획 중 현재 80% 정도가 완료됐다. 취임 때만 해도 대학에 문제가 많았다. 활주로와 철로로 막힌 공간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건물을 더 짓고 싶어도 군사지역 제한에 걸렸다. 오죽하면 ‘한국항공대 캠퍼스는 겸손하다’는 말도 들었겠나. 건물이 별로 없다 보니 연구나 학습, 실습공간이 부족했다. 지금은 다행히 잘 해결됐다. 그동안 건물을 4개나 지었다. 학생들과의 갈등도 심했는데 그 문제도 잘 해결됐다. 처음 왔을 때 총장실 문이 파손돼 있길래 ‘왜 이러느냐?’ 물어보니 ‘또 부서질 텐데 뭐하러 고치냐’고도 하더라. 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때 아닌가. 인생의 황금기인데, 대학과 갈등을 겪고 있다니 안타까웠다. 이런 문제를 오히려 발전의 기회로 삼자는 생각이 들었고, 학생을 위한 행정에 힘썼다.”


- 학생들의 태도는 많이 바뀌었나.

“처음 한국항공대에 왔을 때 가장 어려웠던 문제였다. 학생들이 굉장히 강성이었다. 등록금 문제 때문에 삭발하고 단식도 하더라. 학생운동 경험이 없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새로운 등록금 제도를 도입했다. 우선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문제는 첫째, 계속해서 오른다는 거, 둘째 (물가와 연동해서) 얼마나 오르는지 학생들이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서 남학생은 군대·어학연수를 포함해 7년간, 여학생은 어학연수 포함해 5년 동결을 입학 때 정해 버렸다. 물가인상은 1~7% 내로 정하고, 벗어나면 재조정한다고 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 못 다니는 학생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을 많이 올렸다. 건강보험을 기준으로 책정했다. 그 뒤로는 학생들의 소란이 없어졌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비운동권 학생회장이 나오기도 했다. 등록금은 학생들의 단체협약 같은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경제 상황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이 나서서 파악하고 도와줘야 한다.”


- 지리적 위치도 중요한 것 같다.

“항공우주 분야는 전 세계 대상이다. 그래서 대학 마케팅을 할 때도 ‘고양시의 한국항공대’가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항공대’라는 개념에 기반을 뒀다. 처음 왔을 때 하드웨어·소프트웨어·아키텍처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드웨어의 경우, 현재 경의선이 복선화하면서 화전역이 들어섰다. 경인선을 통해 1시간 내외로 올 수 있게 됐고,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에서는 10분 거리로 줄였다. 소프트웨어는 내부 제도들을 고쳤다. 특히 3년 반 사이에 예산을 두 배로 늘렸다. 가능성이 충분한 대학이었고, 예산이 현실화돼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다음이 아키텍처. 대학이 커지면서 재조정이 필요했다. 한 학년이 900명 정도인데, 공대가 3분의 2, 비공대가 3분의 1이다. 두 분야에 다른 룰을 적용해야 해서 공과대학과 항공·경영대학 둘로 나눠 2개 단과대학에 1개 학부, 그리고 2개 대학원(대학원, 항공·경영대학원)으로 운영 중이다.”


- 한국항공대 같은 대학이 드물다.

“우리처럼 연구와 비행교육을 같이 하는 대학이 거의 없다. 미국·중국·동유럽에 일부 있지만 대부분 연구와 실습이 구분돼 있다. 여기 왔을 때 한국항공대의 목표가 ‘세계 10대 특성화 대학’이었다. 그래서 ‘그 10개 대학은 어디냐’ 고 물어봤더니 대답을 잘 못하더라. 사립대에서 비행기 띄우고 연구하고 우주·로켓·위성까지 다루는 대학이 있나. 난 한국항공대가 세계적 대학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막연하게 100대 대학, 10대 대학 이럴 게 아니라 우리만의 특성화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NASA나 보잉에 사람을 보내 그곳 상황을 보고 오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다. 세계 최고가 되려면 세계 최고 조직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NASA에 다녀온 학생들은 깜짝 놀라더라. 그리고 실제로 행동도 달라졌다.”


- 어떻게 세계적 대학이 될 것인가.

“우리나라는 대학이 의무교육처럼 돼 버렸다. OECD에서 개인이 교육에 투자하는 비율도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 사교육 시장이 비대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 지원이 5조원 정도인데, 하버드대 한 곳만도 3조원이 넘는다. 국가 지원도 너무 적다. 이런 상황이니 고등학교까지는 사교육으로 어떻게든 대학만 가려 하고, 대학은 등록금에 의존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단 졸업만 하자’ 이렇게 되는 거다. 요즘 사회적 화두는 단연 ‘세계 100대 대학’인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 의무적으로 가는 대학이 됐다면, 시집·장가가려고 대학 진학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100대 대학 되려고 모두 입학사정관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우선 우리의 특성부터 살펴야 한다.”


- 한국항공대의 미래는 어떤지.

“한국항공대는 외롭게 길을 가고 있다. 한국전쟁 무렵 3개 과에서 시작해 이만큼 성장했다. 지난 2007년 동문들 만나느라 전국을 다 돌아봤다. 깜짝 놀랐다. 항공우주 분야의 기업체나 연구소 15%가 모두 항공대 출신이다. 동문이 1만7000명밖에 안 되는 대학인데도 이 정도다. 전쟁 당시, 먹고살기 힘든 때에 외로운 길을 지켜 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견하고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55주년 개교기념일 행사 때 ‘오늘은 한국항공대가 55주년 된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항공우주 분야가 55주년인 날’이라고 했다. 앞으로 항공우주산업이 우리 미래다. 한국항공대는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항공대 출신이 아니신데.

“나름대로 다른 경험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 한국항공대 출신이 아니라서 한국의 대학들, 그리고 한국항공대의 문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막연하게 세계 10대 대학이 되겠다는 것보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바탕 속에서 한국항공대의 문제가 뭔지, 그리고 뭐가 필요한지를 알게 됐다. 그게 바로 총장직을 수행한 4년 동안 얻은 거다. 예산이 기대치만큼 늘어난 것도 성과다. 예산 2배 증원은 쉬운 게 아니다. 이건 기적에 가깝다.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 보니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지나친 경제성장에 문화적 성장이나 규제·법은 못 따라가고 있다. 그 과정의 성장통을 겪는 것은 아닐까 싶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한국항공대에 왔을 때 아는 사람도 없고 내부도 잘 모르니 청탁 같은 게 없어서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다. 다만, 지난 4년 동안 구성원들과 대화할 때 너무 미국식으로 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 연임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책상 맞은편에 ‘不盈科不行(불영과불행)’을 기록해 뒀다. 물이 흘러갈 때 구덩이가 있으면 다 채우고 흘러가듯,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구성원의 어려운 점을 이해하고 채워 가려 한다. 최근엔 NASA의 교육 프로그램인 게이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을 검토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유니크한 대학, 특성화가 강한 대학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항공대는 동아시아 항공우주분야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

 

여준구 한국항공대 총장과 대담하고 있는 본지 박성태 발행인(오른쪽)


여준구 총장은...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후 오레곤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와이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프로그램 매니저·프로그램 디렉터·동아시아/태평양지역 디렉터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국토해양부장관자문단 항공철도분야 자문위원, 대교협 국제화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국제항공연맹 Air Sport Medal, 오레곤주립대 공대 ‘Engineering Hall of Fame’ 등에 선정됐다. 지난 2006년 11월 한국항공대 제5대 총장에 선임된 바 있다.

정리 김기중 기자 gizoong@unn.net 사진 한명섭 기자 prohan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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