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유럽발 금융위기, 천안함, 지방선거, 4대강은 잠시 휴식! 이제 만인의 왕, 축구가 왔다. 앞으로 잠시 동안은 월드컵 축구, 아니 더욱 정확하게는 ‘FIFA’가 모든 것을 지배할 것이다. FIFA의 지배력을 잘 보여주는 사안은 단연 ‘공공장소 전시권(public viewing event)’이다. ‘장외에서 2인 이상이 월드컵을 시청하려면 원칙적으로 FIFA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월드컵을 ‘함께’ 보려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경기를 함께 관전하는 이들이 하나의 집단이 되면서 생성되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분위기는 한편으로 주위 환경과 접촉하고 접속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을 만족시킨다. 다른 한편 공공장소에서 함께 축구를 시청하는 이들(public viewer)은 모종의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이 소속감은 많은 사람들이 공적인 이유로 공적인 장소에서 함께 행동하는 공동체의 긍정적인 체험에서 비롯한다.

공동체의 체험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이슈는 아니다. 그 연원을 따지자면 지난 세기의 크고 작은 대중 집회들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의 획기적인 기준점은 역시 2002년이다. 당시 탱크와 월드컵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다른 서구 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대세가 된 개인화 추세 때문이다. 전통적인 사회적 결속을 해체하고 사람들을 개인으로 분산하는(물론 사회구조적인 차원보다는 생각과 의식의 차원에서) 개인화는 공동체를 희소재로 만든다.

월드컵 거리응원과 같은 일시적인 공동체는 개인화의 도도한 흐름에서 파편화된 사람들의 욕망, 즉 공동체와 집합적인 소속감을 희구하는 욕망의 결과다. 전통적인 거대 집단의 결속이 파괴된 곳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대안적인 공동체들을 추구한다. 친족집단, 이웃, 지역사회의 자리에 이른바 ‘탈전통적인 공동체들’이 들어선다. 새로운 공동체들은 전통적인 의식, 의무, 규범으로 사람들을 ‘묶지’ 않는다. 새로운 공동체는 선택 사양이다.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외부적인 힘이 우리를 종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원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결과인 공동체의 체험과 집합적으로 공유하는 감정들을 사람들이 희구하는 이유는 고되고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서 벗어나 일상과 다른 세계(反世界)의 창출이야말로 월드컵 거리응원의 궁극적인 이유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일상문화가 후기근대적으로 페스티발’처럼 되었다고 한다. 남녀노소 불문, 계층의 차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체 사회가 사회적 장벽이 없는 파티에 참여하면서 선택적이며 순간적인 공동체를 세운다.

종교적인, 혹은 전통적인 의례가 사회의 결속을 만들지 못할 때 세속적인, 아니면 탈전통적인 의례가 공동체 의식을 만든다. 월드컵 거리응원은 의사(pseudo)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비일상적이며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특수한 세계다. 응원 장소로 ‘함께’ 가면서, 특수한 상징을 몸에 두르고 고유한 제의와 의례(응원구호와 몸짓, 응원가)를 행하면서 하나의 단일한 집단이 새롭게 태어나는 세계. 이러한 의례에서 모시는 신은 캡틴 박지성도, 국가도, 축구 그 자체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개인화된 신, 즉 자기 자신이며 그곳에 운집한 군중들은 함께 그러나 오로지 자기 자신을 찬양한다. 이런 맥락에서 축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혹은 혐오하면서도) 거리응원이라는 거대한 파티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바로 그 사람들.

많은 이들의 궁금증. 이번 월드컵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스페인, 브라질, 아니면 파티 참여자들? 스위스의 한 사회학자는 아디다스와 코카콜라를 거론한다. 철저히 상업화된 월드컵의 최후의 승리자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그의 동족인 FIFA 회장이 발전ㆍ완성한 ‘public viewing’이다.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스스로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FIFA의(많은 경우 지불을 전제로 한) ‘말씀’이 있어야 모일 수 있다. 승자는 결국 FIF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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