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은 커다란 창이 한 면, 신사임당의 초충도·화조도 이미지를 콜라주한 벽이 한 면, 나머지 두 면은 책장이 차지하고 있다. 주인을 닮은 공간은 아늑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의 본래 연구실은 이곳이 아니었다.

“제 연구실을 학생들과 학회에 양보했어요. 이곳은 통섭원인데 여기서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온갖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죠.”


2006년 가을 문을 연 이화여대 통섭원. ‘통섭(統攝)’이란 ‘지식의 대통합’을 뜻하는 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범 학문적 연구를 뜻한다. 최재천 교수는 이곳에서 통섭원장을 맡고 있다.

“모든 사람이 여러 분야에 걸쳐 학문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시대에 학문하는 사람 상당수는 한 분야만 파서는 안 된다는 거죠. 다만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대개 여러 분야에 걸쳐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최 교수는 ‘아바타’라는 영화로 통섭을 설명한다. ‘아바타’의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이지만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는 한국인 여럿이 참여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제임스 카메론 같은 인물을 탄생시키려면 ‘통섭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바타를 보니 제임스 카메론은 컴퓨터 공학, 신화뿐 아니라 생태학적 지식도 갖고 있더라고요. 그처럼 대단한 인물을 배출하고 싶다면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재를 만들어야 합니다.”


‘통섭형 인재’를 기르는 데 앞장서는 최재천 교수의 실제 수업은 어떨까. 마침 최 교수를 인터뷰한 날은 이화여대 성적 입력 마감일이었다. 시험점수, 출석, 과제를 평가하는 여타 수업과 달리 최 교수의 수업은 평가 항목이 다양하고도 많다. 특이한 것은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 수업이 정보 전달을 중요시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길 원합니다. 필기할 필요가 없는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처음에는 당황해 하죠. 전 학생들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뿐입니다.”


최 교수의 ‘환경과 인간’ 시간에 학생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여러 위원회에 소속된다. 예를 들면 ‘그린 캠퍼스 위원회’, ‘디자인 수도 서울 위원회’, ‘먹을거리 문화 개선위원회’, ‘자전거 도로 개발 위원회’ 등이다. 학생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보좌관 또는 위원장 역할도 한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위원회에 속한 학생들끼리 서로 고민하고 스스로 찾아 공부한다. 서로 토론하고 정책과 개선책을 만든다.

“학기말에는 학교에서 가장 분주한 곳에서 발표회를 합니다. 한 학기 동안 고민했던 것을 학교 전체랑 공유하는 거죠. 전공과 관련 없는 수업을 듣고 이쪽 분야로 전향한 친구들도 있고, ‘지역개발 위원회’하던 친구들은 아현동 재개발 지역에서 지금도 주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끝났지만, 거기는 안 끝났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뿌듯합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는 수업을 하는 최재천 교수는 ‘연구’와 ‘교육’ 중 하나를 굳이 택하라면 ‘교육’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대학이 교수를 연구업적으로 평가하는 풍토를 비판합니다. 대학이 대학 같지 않고 연구소와 차이가 없는 이상한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교수들이 후배를 양성하는 일은 등한시하고 뭔가 세계를 상대로 큰 연구에 도전하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대학 본연의 임무는 교육입니다.”


의대입시 실패로 2지망으로 들어가게 된 동물학과, 79년부터 90년까지 11년에 걸쳐 미국에서 딴 학위. 힘들게 보이는 그 길을 최재천 교수는 “남들보다 많이늦었지만, 행복하게 앞만 보고 달렸다”고 말한다.


“그 동안 치밀하게 제 인생을 디자인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꿈이 있다면 리처드 도킨스처럼 세계인이 쉽게 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어렵게 시작한 영장류 연구를 4년째 하고 있는데,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영장류 연구를 하는 나라는 딱 네 국가, 미국·영국·독일·일본뿐입니다. 10년만 더 하면 우리나라가 그 다섯 번째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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