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호 본지 논설위원·경희대 언론소통학 교수

우리나라는 지난 60여 년간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만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경제규모나 무역량으로 대략 세계 12∼13위권이라 한다. 특히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 공여국이 된 유일한 사례다. 가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교육이 기여한 바가 크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뒷받침돼 열심히 가르치고 배운 덕분에 이 정도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 원인은 많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교육을 꼽는다. 교육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믿기에 다시 변화된 교육의 힘으로 재도약을 이루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우리 교육은 ‘훈련된 교사’, 정확히 말하면 일정한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지식에 의존해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바로 주입식·암기식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배타적 경쟁심을 유발하고,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한 사람이 승자이자 똑똑한 사람’이라는 도식을 머릿속에 심었다. 이런 과정에서 파생된 ‘시험’은 객관성이라는 미명 아래 선다형이 대세가 됐다. 모두가 승자가 되려는 배타적 경쟁에서 그 결과에 승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숫자화·객관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는 점수가 학습의 최종목표가 되고 정작 교육의 바탕인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의 소통은 실종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까. 하루가 멀게 쏟아져 나오는 최첨단 정보의 폭증은 개인적 사유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혼자서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집단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창의적 소통능력’이다. 이는 남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습득하고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럼 창의적 소통능력을 어떻게 함양할 수 있는가. 초등학교부터 토론식 수업으로 교육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급우들과 어울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의 표현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생각을 제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촉진자 역할을 한다. 물론 학생 개개인의 능력은 과거와 달리 철저한 관찰과 교사의 엄밀한 판단을 통해 평가돼야 한다.

필자를 포함한 현재 교육계 종사자들은 단언컨대 대부분 토론식 교육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각급 학교 교사들도 객관식 시험인 임용고사에는 합격했지만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교육현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교사 양성과정에서 토론식 교육방법을 철저히 습득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연수를 통해 일선교사들을 재교육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치권은 4대강 사업 문제로 시끄럽다. 소통은 없고 일방적 홍보와 수용을 전제로 한 설득만 난무한다. 주입식·암기식 교육만 받아 왔지 토론식 교육을 받지 못한 기성세대나 정치권에 창의적 소통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일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남을 배제시켜야 하고, 그러다 보니 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창의적 소통능력을 키워 가는 과정에서 남을 배려하고 남의 생각을 수용하며 남과 어울리는 법을 터득했더라면 더욱 발전된 안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과연 누구로부터 창의적 소통능력을 배울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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