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우리나라도 명실상부한 원자력 강국이자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 같은 성과를 이루기까지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정근모 한국전력 고문이다. 정 고문은 우리나라의 원자력 원년인 1959년 원자력과 인연을 맺은 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부흥에 기여했다. 뿐만 아니다. 정 고문은 지금까지의 성과에 멈추지 않고 미래도 준비하고 있다. 바로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설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 정 고문은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가 설립되면 우리나라가 세계 원자력 발전을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원자력과 맺은 인연이 궁금하다

“1959년이 우리나라의 원자력 원년이다. 1959년 1월 1일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정식으로 설립됐고, 그해 3월 2일 고 이승만 대통령께서 원자력원을 발족시켰다. 또한 그해 7월 14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실험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II(TRIGA Mark-II)의 기공식이 있었다. 1959년 당시 행정대학원 1학년생으로 정부에 파견돼 원자력원장 보좌역으로 일했다. 그러니까 지난해 우리나라 원자력의 역사가 50주년이 된 것처럼 저 역시 (원자력과 인연을 맺은 지) 50주년이 됐다.”

- UAE에 원전을 수출한 것은 세계사에 남을 만한 일이 아닌가

“1959년 고 이승만 대통령께서 꿈을 갖고 삽을 들었을 때만 해도 50년 후 우리나라가 대규모 원자력 발전로를 해외에 수출할지 누가 알았겠나. 무엇보다 UAE가 원자력 발전소를 발주한다는 건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다. 그 나라는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원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은 순전히 자기들의 계산에 의해서다. 즉 석유값은 치솟았고 발전하는 데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훨씬 싸다. 그래서 석유는 팔고 원자력으로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계약한 금액이 200억 달러라고 하지만 (원전을) 운전·보수 등 모든 과정을 다 하면 400억 달러가 된다. 우리나라는 말로만 하는 원자력 발전 사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계약을 한 것이다.”

-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이 그 정도까지 축적됐다는 의미인가

“축적이 됐다. 1982년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의 핵심인 코펙(KOPEC·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장에 부임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있는 나라는 미국·캐나다·프랑스뿐이었다. 그래서 정부에 우리가 세 나라의 기술을 완전히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표준화시켜야 된다고 건의했다. 정부가 수용해 줘서 국제 입찰을 붙였고 컨버스천 엔지니어링이라는 미국 회사의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하게 됐다. 그런데 한국 표준형을 개발하겠다고 해 욕을 많이 먹었다. 전임 과학기술처 장관들이 한 회사에 시장을 다 팔아 주려는 것 아니냐고 공격했다. 그래서 10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결국 국제 입찰로 컨버스천 엔지니어링형을 채택해 우리가 완전히 기술이전을 받고, 소화하고, 계량하는 것을 계속해 온 것이다.”

- 프랑스를 제치고 UAE 원전 수출을 이뤄냈다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했던 프랑스는 우리한테 진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력이다. 우리는 전력시스템을 잘 만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력회사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전력회사(EDF)는 하나지만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회사는 아레바(Areva)라고 따로 있다. 우리는 한전을 정점으로 해서 하나로 체계화돼 있다.”

-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 세계 전기의 주된 에너지가 원자력으로 바뀔 것으로 보나

“전기를 발생시키는 방법에는 석유·가스·수력발전·태양광발전·풍력발전·원자력발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수력은 많은 나라에서 한계에 이르렀다. 석유나 가스는 값이 올랐고 석탄은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태양광은 무료이지만 항상 있는 게 아니다. 태양이 없을 때는 축적된 전기를 써야 한다.”

- 한때 환경론자들이 원자력을 많이 반대했는데

“환경론자들도 요즘에는 찬성한다. CO₂를 발생하지 않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원자력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를 시작한 친구도 이제는 원자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그래서 원자력 부흥이 온 것이다.”

- 원자력에 관해서는 낙관주의자이신 것 같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부흥 시대의 기수가 돼야 한다고 본다. 낙관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력들이 전 세계의 원자력 발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정근모 고문과 환담하고 있는 이인원 본지 회장(사진 왼쪽)

- 그런 의미에서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고 있는 것인가

“현재 전 세계에서 31개국이 원자력 발전을 하고 있고 2030년까지는 70개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 누가 기술을 제공하고, 제조하고, 건설하고, 운전하는가가 핵심이 됐다. 그래서 지난해에 한전에 ‘핵심은 인력이다.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2일 기공식을 가졌다.”

-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는 어떻게 운영되나

“핵심 학위과정은 기술박사과정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기획·설계·건설·운전·보수·운영 등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 학생과 교수 규모는

“입학 정원은 100명이다. 그중 50명은 국내에서, 50명은 해외에서 선발한다. 해외의 경우 개인적으로 선발하는 게 아니라 아부다비처럼 우리와 계약된 나라에서는 10명씩 뽑고 계약할 전망이 있는 나라에서는 4~6명을 뽑는다. 모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교수도 1/3은 외국인이다.”

-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는

“법인은 교육과학기술부 인가를 받았다. 학교 인가는 건물 완공이 내년 2월경이라 그때 받아야 한다.”

-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를 선호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도 변할 것이다. 사실 의사가 힘든 직업 아닌가. 원자력연구소에 갔더니 인류학을 공부한 친구가 월급을 가장 많이 받았다. 돈을 많이 받고 적게 받는 것은 수요·공급에 따른 것이지, 기술에 따른 것이 아니다.”

- 물리학 전공 학생들이 원자력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활로는 넓을 것 같다

“물리학 전공자도 필요하지만 원자력발전소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기계공학·전기공학·재료공학·원자력공학 전공자들이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원자력이 주연료가 되려면 기술·자금·제조능력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술이 앞서 있는 나라들이 원자력에 치중하고 가난한 나라들로 하여금 화석연료를 싸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도 원자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담 : 이인원 본지 회장 / 정리 : 정성민·송아영 기자 / 사진 : 한명섭 기자>

 


 정근모 한국전력 고문은...

 1939년 서울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 원자력연구원장 보좌역을 지낸 뒤 미국 남플로리다대 물리학과 조교수, 미국 뉴욕공대 전기물리학과 부교수, KAIST 교수 겸 부원장, 한국전력기술 사장, 국제원자력기구 의장,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과학기술처 장관, 호서대·명지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은탑산업훈장·청조근정훈장·장영실과학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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