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작년 여름 국회는 오두방정을 떨어가며 위법하게 미디어 관련법을 처리했다. 신문법과 방송법을 뜯어고쳐 한국의 미디어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들겠다는 명분을 세웠으나, 법안 처리과정에서 갖가지 추태가 연출돼 오히려 국회 스스로 국제적 조롱거리가 됐다. 분초를 다퉈가며 법안을 강행 처리했으나 정작 정부는 정책 추진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 종합편성(이하 종편)채널 사업자 선정을 작년 말까지 끝내기로 했다가 올 봄에 마무리 짓겠다고 슬그머니 연기하더니 이번 여름에는 어떤 식으로든 가닥을 잡기로 한 모양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8월 중순쯤 종편채널 도입과 관련한 기본계획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기로 했다는 소문이다.

정책 결정의 핵심은 몇 개의 사업자에게 종편채널을 허가해 줄 것인지와 어떤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할 것인지 여부이다. 두 가지 사안은 맞물려 돌아간다. 비교심사방식을 통해 1∼2개 사업자를 선정하자는 의견과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사업자들 모두 허가해주자는 준칙주의 주장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조선·중앙·동아일보 3개 종합일간지와 매일·한국경제 등 2개 경제지가 종편 진출을 준비해 왔다. 지난달 15일 이들 5개 신문사의 관계자들이 종편과 관련한 라운드 테이블을 가졌는데 조선·동아·한경은 비교심사방식을, 중앙·매경은 준칙주의에 의한 선정방식을 지지하는 입장 차이를 보였다. 자본금 규모의 배점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이 노출됐다.

그러나 종편준비 사업자들은 한 입으로 종편채널의 의무전송과 채널 연번제 도입을 주장했다. 유료방송을 통해 송출되고 있는 지상파 수준의 낮은 번호를 종편에 부여하고 더불어 모든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종편채널을 가입자들에게 무조건 송출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종편채널에 광고자원을 끌어주거나 아니면 정책적으로 한국의 광고시장 자체를 키워달라는 속내도 감추지 않았다. 한국방송 수신료를 인상하고 대신 제2텔레비전의 광고를 줄이거나 없애서 방송광고비가 종편으로 흘러들도록 힘써달라는 주문으로 읽히지만, 뜻대로 쉽게 풀릴 사안은 아니다.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고 더욱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방송광고가 정부당국자나 종편사업자의 바람대로 고스란히 종편의 떡고물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종편의 등장은 지역 언론의 입지를 더욱 곤궁하게 만들 것으로 예측된다. 보유하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의 특성상 지역 언론이 소비자들에게 경쟁력 있는 정보 상품을 제공하기는 역부족이다. 언론 상품은 해당 소비권역의 언론소비자 규모에 비례해 경쟁력을 발휘하는 게 정설인데 지역 언론의 지리적 배포 범위는 일반적으로 매우 협소하고, 소비능력을 갖춘 거주 인구의 숫자도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극히 제한된 자원을 투입해 제작하는 지역 언론의 콘텐츠는 서울의 거대한 언론기업이 제작·공급하는 콘텐츠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고 서울 제품에 입맛이 길들여진 지역 언론 소비자들의 지역매체 이탈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조만간 새로 재편될 미디어랩 시장 시스템과 더불어 지역 언론의 존립 기반을 위협할 강력한 요소로 종편을 경계하게 된 배경이다.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관점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자원을 갖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거기서 서울 올라오는데’ 몇 시간 걸렸다는 관점의 정보는 ‘여기서 서울 가고 오는데’ 몇 시간 걸렸다는 정보와 같지 않다. 새로운 매체를 도입하는 정책결정을 할 때 지역언론의 정보유통 체계가 고사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종편사업자 선정 심사과정에서 신청자들이 지역의 언론정보 문화사업을 위해 어떤 투자계획과 실행 방침을 제시하는지 엄정하게 살펴보고 허가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서울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디어 사업자들이 국제 경쟁력을 키워 세계로 뻗어나갈 궁리를 하지 않고, 지역 곳곳에 빨대를 꽂아 지역의 광고 물량이나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려는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각별한 심사 장치를 마련할 것을 규제기관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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