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팀장 정성민

지난 11일 정부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이날은 정운찬 전 총리의 이임식이 있었다. 정 전 총리는 “국민 여러분과 땀과 눈물, 기쁨과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며 이임의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정 전 총리는 총리 시절 사용하던 에쿠스가 아닌 쏘나타 차량을 타고 청사를 떠났다.

정 전 총리는 대학 교수·총장 시절 존경받는 학자였다. 또한 총장을 지낼 당시에는 남다른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정운찬만이 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정원 감축과 김민수 교수의 복직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은행 총재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에 대해 “상아탑에 남아 건설적 비판을 하는 것도 지식인의 사명이 아니냐”며 고사한 일화는 유명하다. 때문에 정 전 총리는 2007년 대선에서 유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인기와 신뢰가 상당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해 9월 취임할 때만 해도 정 전 총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학가에서는 총장 출신 총리에 대한 기대도 컸다. 야당의 공세도 있었지만 정 전 총리는 ‘스타 총리’를 예고하며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정 전 총리의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특히 세종시라는 거대 장벽에 부딪히며 급기야 ‘MB의 총대맨’, ‘세종시용 총리’로까지 전락했고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자 10개월여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정 전 총리의 퇴임을 보며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봤다. “만약 세종시 문제가 없었다면”, “만약 이 대통령이 정 전 총리가 자신의 뜻과 능력을 보다 강력하게 펼칠 수 있도록 해 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단정 짓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씁쓸한 퇴장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학자 정운찬은 성공했지만 정치인 정운찬은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정 전 총리는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너무 험난했다”, “교수로 30년을 지내 여의도 언어에 익숙하지 못했다” 등 정치의 어려움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는 정 전 총리의 개인적 발언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 교수·총장 출신으로 정치를 하기란 만만치 않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정 전 총리의 퇴임은 폴리페서를 꿈꾸는 교수와 총장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일지 모른다. 정치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그리고 학자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지금 폴리페서를 꿈꾼다면, 여전히 폴리페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씁쓸한 퇴장 뒤에 남긴 정 전 총리의 메시지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