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근 본지 논설위원,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4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는데도 경기회복은 윗목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블딥’이라는 먹구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니 윗목은 당분간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 및 글로벌 경제의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이 견고한 회복세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재정투입이나 수출의 증대 등으로 일자리 구조의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가 ‘일자리 만들기’와 전쟁을 하는 이유다. 현재의 일자리 문제는 국가마다 정도 차이가 있지만 제조업을 비롯해 기존 산업들의 고용흡수력이 한계에 도달했고, 특히 청년층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의 업그레이드와 산업의 다양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의 기술 평준화, 경쟁 심화와 자동화, 그에 따른 공급과잉으로 제조업의 고용흡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제조업 강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대책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Andy Grove)의 주장이다. 지난 7월 비즈니스위크 기고를 통해 그는 미국의 일자리 문제를 미국 제조업의 위기와 관련지우며 제조업의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무역전쟁까지도 수행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였다.

예를 들어, 아이맥스, 아이팟, 아이폰을 만들어낸 애플은 미국에서 약 2만 5천 명을 고용하고 있는 반면 애플 제품들을 생산하는 중국의 팍스콘(Foxconn)에서는 그 열 배에 해당하는 약 25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듯이 실리콘 밸리의 혁신이 더 이상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제조업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해외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생산물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것을 주장하였다.

무역전쟁과 보호주의를 의미하는 앤디 그로브의 주장은 커다란 공감을 얻지 못했다. 미국 일자리 만들기의 해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역전쟁이 글로벌 경제를 다시 침체로 빠트릴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인텔 수입의 72%가 해외에서 나오듯이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미국 기업들이 될 것이고, 이는 오히려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미국에서 필요한 일자리는 중국 팍스콘의 일자리가 아니다. 현재 미국 전체 일자리의 20% 정도만이 연 6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만들고 있고, 나머지 80%의 연평균 소득은 미국의 1인당 소득보다 낮은 3만3천 달러에 불과하다.

문제는 지금까지 과학과 기술 혁신을 주도해왔던 미국에서 2000년 이후 혁신이 크게 저하됐고 벤처캐피탈 모델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고, 교육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미국에서조차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의 부족 문제를 겪고 있듯이 산업체계와 구조의 변화는 그에 상응하는 금융과 교육과 법률 등 새로운 소프트 인프라스트럭처를 필요로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 노동력의 훈련 및 개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투자, 그리고 기업가 육성의 장애물들인 아이디어의 사업화에 필요한 지식, 자금조달의 어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해소 등을 우선순위로 합의를 모아가고 있는 분위기도 이와 관련이 있다.

최근 ‘청년층을 위한 글로벌 고용 추세’에 대한 보고서에서 국제노동사무국 (International Labour Office)이 종합적인 교육프로그램의 강화, 금융 지원, 사회적 자본의 제고 등을 청년층 일자리의 주요 해결책으로 제시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산업의 업그레이드와 다양화에 필요한 정보와 노동력 공급, 새로운 기술 및 시장에 대한 리스크 등은 기업이 내재화시키기 어려운 일종의 공공재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의 고용이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도 청년층 일자리가 악화된다는 사실은 정부가 청년층 일자리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한 사회의 문화와 정체성 등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서비스업의 특성을 간과한 미국 서비스업 따라 하기나 정치적 압력에 의한 기업의 채용 증가 등으로 청년층 일자리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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