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대학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표절 논란이 이 총장의 사의표명으로 일단락 됐다. 이 총장이 사표를 제출한 뒤 명절을 지난 20일 고려대는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다. 다만 교내 게시판에는 이필상 총장의 사의표명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글과 대학 개혁의 걸림돌을 '교수집단'으로 지목한 글이 눈길을 끈다. 이번 사태를 취재한 기자 또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다. 표절이나 중복게재 등 연구윤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기준이 명확히 세워지고, 부정 연구행위가 근절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그러한 길로 나아가는 과정의 하나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대학 경영자이기 이전에 학자인 대학 총장의 덕목에 윤리적인 연구행위가 뒤따라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다. 다만 이 총장이 진정 공정한 조사에 의해 논란의 중심에 섰고, 결국 총장직에서 낙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대 구성원을 포함, 대학사회의 상당수가 동의하지 않는다. 이 총장을 조사한 교수의회 진상조사위원회는 그의 논문 중 6편을 표절로, 2편을 중복게재로 판정했다. 그러나 8편 중 6편은 90년대의 것이고 1편은 80년대 것으로 과기부 지침에 따르면 '진실성 검증 시효'를 지난 것들이다. 지난 8일 과기부가 공포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르면, 부정연구행위의 진실성 검증 시효는 만 5년이다. 과기부 지침 3장 12조에는 "표절 등에 관한 제보의 접수일로부터 만 5년 이전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접수하였더라도 처리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5년 이전의 부정행위라도 피조사자가 그 결과를 직접 재인용해 5년 이내에 연구비 신청 등에 사용했을 경우는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총장의 경우 그런 용도로 논문을 사용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이 총장이 조사과정에서 당한 피해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과기부 지침 2장 10조(피조사자의 권리 보호)에는 검증과정에서 피조사자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 있다. "연구기관 및 연구지원기관은 검증과정에서 피조사자의 명예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2항)고 명시돼 있고, "부정행위에 대한 의혹은 판정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외부에 공개되어서는 아니된다"(3항)고 명시돼 있다. 물론 과기부 지침을 경영학 논문 표절에 적용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려대 교원윤리위원장인 김병호 교수(공과대)는 "과기부 지침이지만, 진실성 검증 시효나 피조사자의 권리 보호 등은 지켜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된 후에 공포된 과기부 지침을 들이대는 것이 합당한가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과기부 지침이 마련되기 이전인 지난해 10월 이미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설치 운영에 관한 표준안'이 각 대학에 전달됐다. 어떤 교수는 "어떻게 교수가 제자의 석·박사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느냐"며 "학문연구성과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춰서 봐야하고, 지금의 잣대로 당시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표절 의혹을 받은 이 총장의 논문 상당수가 90년대 이전 것이고, 2001년 논문도 표절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고려대는 오는 6~7월께 자체적인 연구윤리지침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 활동에서의 윤리성이 확보되길 바라는 기대가 크다. 특히 이를 계기로 더 이상 과거지향적인, 소모적인 논쟁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목소리에는 이번 이 총장 사태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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