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정치개혁 필요

정의에 대한 논쟁이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임기 후반의 정책기조로 선언했다. 지난달 20일 내한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산델은 “한국사회가 정의에 목말라 있다”고 진단했다. 현실정치에서 정의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정의에 대한 관심과 논쟁을 무색하게 하는 사건을 우리는 지난 일주일간 보고 들어 왔다. 8월 8일 개각으로 총리를 포함한 8명의 장관과 청장에 대한 청문회가 계속됐다. 총리를 포함한 3인의 자진사퇴로 폭염 속의 청문회 공연은 막을 내린 듯하다.

지난달 폭염과 폭우 속에 진행된 청문회는 “죄송하다”라는 말로 간단히 요약될 수 있다. 마치 가톨릭 교회의 고백성사인양 바짝 몸을 낮추고, 낮고 느린 어조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후보자들을 보는 일반시민의 심정은 그야말로 답답함과 허탈 그 자체였다. 정의에 대한 갈급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지난 2000년 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언젠가부터 공직자들의 자세는 무조건 낮은 포복이었다. 청문회의 청문위원들이 일단 공격 자세를 갖추니, 청문 대상자의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이 잘못됐다고 무조건 질타할 수는 없다. 자세를 낮추는 것이 비굴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모든 일에는 작전상 후퇴도 있게 마련이다. 손자병법에는 줄행랑도 작전의 하나로 들어 있으니 이에 대해 가타부타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는 대상자의 능력과 문제점을 검증하고 지적해 국정을 투명하게 담당할 능력이 있는지를 가리는 자리다. 인사청문회는 고백성사처럼 죄를 고백하고 자복해 용서를 구하고 받는 자리가 아니다. 인사청문회에서 고백성사를 했다고 죄가 면해지는 것도 아니다. 고백성사를 해 죄가 면해지려면 가톨릭 교회의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 국회로 올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번 청문 대상자들을 다시 헤집어 보니 범법행위 투성이다. 여태까지 할 수 있는 대로 저질러서 다 집어먹어 놓고, 이제 와서 잘못했으니 봐 달라는 것은 인사청문회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고, 정치논리로 그냥 넘어가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도덕성의 부재’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인정되고 있다. 자연과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았던 남산 딸깍발이는 역사 속의 박제로 남아 있다. 도덕성의 부재의 시작은 유감스럽게도 그 사회의 상류층에서부터 발원한다. 우리의 상류층을 보자. 실제로 우리의 상류층은 돈과 권력의 있고 없음으로 구분되고 정의된다. 서양 자본주의의 악영향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서양 자본주의의 본산인 서양사회에 있는 자들의 행태를 보자. 그들에게는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그들의 규칙이 있다. 그들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있고 없음에는 반드시 윤리의식도 어느 정도 따라다닌다. 그 자본주의를 우리가 들여오면서, 돈과 권력 아래 붙어 있는 그들의 윤리를 떼어버렸다.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은 윤리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도덕을 그 아래 붙였어야 했으나, 어느 정권도 거기에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나 다른 것에 바빴다. 그 대가를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얼마 동안이나 계속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

현재 우리 사회가 정의사회를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자의 의무)’를 기대하기 무척이나 어려운 사회임을 모두 동의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능력에 대한 논쟁도 필요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도덕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이에 갈증을 느낀다. 산델의 말처럼, 정치에 만족하지 못해 정의에 갈증을 느끼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면, 일단 갈증은 해결하고 가야 한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역사를 통찰하는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변화는 아무리 늦더라도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원칙을 엄격하게 현실에 적용하는 아픈 과정을 통해 변화는 이뤄지고 미래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미래의 권력추구자, 미래의 공직자들은 지금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도덕성부터 가다듬어, 자신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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