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있는 풍경,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

학교 폭력, 사제지간 갈등, 사교육 열풍 등으로 최근 우리의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스승의 날'도 단지 연례행사일 뿐, 더 이상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 아니다. 이는 대학도 마찬가지. 해를 거듭할수록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작은 파티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서먹서먹한 기운만이 강단을 감돈다. 스승과 제자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점차 두터워져갈 뿐이다. 하지만 여기 우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희망의 이야기가 있다. 이 시대 참된 스승과 제자상을 아직까지 고이 간직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 학생과 선생님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365일 울려퍼지는 '스승의 은혜' “오늘은 2학년 혜빈이, 3학년 준우, 4학년 지은이의 생일파티가 있는 날. 생일 축하를 위해 전교생은 물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까지 참석했다. 학부모들은 손수 떡을 만들고 과일을 준비했다. 생일을 맞은 동생들을 위해 언니, 오빠들은 멋진 피리공연을 선보였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아이들이, 또 한 쪽에서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찌 보면 ‘스승의 날’ 특집 드라마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에는 언제라도 이 같은 풍경을 볼 수가 있다. 바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사랑이 있는 풍경을··· 경북 상주시에서 속리산을 향해 30분 정도 차를 달리다 보면 화서면 신봉리에 위치한 조그만 2층 건물 하나가 나온다. 바로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 올해 1학년이 된 현우부터 내년이면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하는 6학년 준도까지 모두 16명의 아이들. 그리고 김인성태 선생님, 김화자 선생님, 윤 완 선생님 이렇게 3명의 교사들, 총 19명의 식구들이 있는 곳이다. 인원수나 학교 크기, 또 건물 안에 완비된 컴퓨터와 대형 TV를 봤을 때 처음에는 정말 분교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16명의 장난꾸러기들과 선생님들이 가족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분교의 모습, 그 자체이다.
송계분교 16명의 장난꾸러기들에게는 한 가지 큰 자랑거리가 있다.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그래서인지 송계분교에는 ‘스승의 은혜’가 단지 스승의 날에만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아이들은 언제라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스승의 날이 1년 내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역시 간단하다. 바로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의 마음이 있기 때문. 송계분교 교사들에게 있어 학생들은 바로 자식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용감이, 의젓이, 멋쟁이 등 사랑스런 별명까지 지어줬다. 교사들의 학생 사랑하는 마음은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자연과 함께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학생 하나하나의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다양한 특별 활동을 운영한다. 씨앗심기, 목공예, 농사체험, 아침산책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느라 늘 고심하지만 학생들을 위한 길이기에 교사들은 행복할 뿐이다. 이로 인해 태권도 학원으로, 피아노 학원으로, 영어학원으로 내몰리는 도시 아이들과는 달리 송계분교의 아이들은 산, 들, 냇가를 뛰어다니며 어느덧 자신의 맘속에 푸른 자연을 그려간다.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 및 교육에 참여하는 것도 송계분교 교사들의 아이디어. 가족 같은 학교를 만드는 데에 학부모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치맛바람이다 해서 학부모들을 학교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학부모들은 교사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학교 행사를 마련하는 등 열심이다. 또 어느 때는 특별 활동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이 같은 교사들의 노력 때문일까? 현재 학생들이 있는 13가구 중 4가구는 스스로 송계분교를 찾아왔음은 물론, 다음달에도 2가구가 더 귀농할 예정이다. 송계분교 16명의 아이들은 당당히 말한다. “학교 폭력 그게 뭐예요?”, “왕따는 또 뭐예요?”라고. 또 아이들은 말한다. “선생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해요”라고. 이에 내년이면 분교를 떠나야 하는 김화자 주임 선생님은 "나의 학생들은 곧 나의 자식들"이라고 자랑한다. 송계분교 19명의 식구들. 이들은 학교 폭력, 사제지간의 불신, 사교육 열풍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교육의 참의미를 보여주며 오늘도 사랑이 있는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송계분교 엿보기 이른 아침 시간. 학생들은 농사일로 일찍 밭으로 들로 나가는 부모님을 따라 일찌감치 학교로 향한다. 학교는 곧 이 아이들에게 놀이터이기에 등교는 매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밭고랑 사이로 난 뚝방길을 따라 작은 개울에 놓인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운동장이 나오는 지름길. 아이들은 교문으로 등교하지 않고 이 지름길을 즐겨 이용한다. 이 다리는 학부모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 만들어 준 사랑이 깃든 다리란다.
친구 누나 형들과 '조기축구'로 몸을 푸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로 조용한 시골마을의 아침은 생기가 돈다. '땡''땡''땡', 종이 울리고 운동장 곳곳에서 놀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면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특히 오늘은 인근 학교의 교사들이 체육대회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날이라 꼼꼼히 청소상태를 점검한 김인성태 분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인솔해 학교 뒤 텃밭으로 향한다. 오늘은 땅콩모종을 심는 날. 저마다 호미를 들고 재잘대며 익숙하게 구멍에 넣고 흙을 덮는다. 한 아이가 흙에서 벌레 한마리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잡아든다. "야, 사슴벌레 애벌레다". "아니다. 장수풍뎅이 애벌레다".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다. 분교장 선생님이 맡은 반은 모두 네 명인 5-6학년. 그중 준도와 도영이가 이 분교의 최고 맏형과 큰누나라 제법 의젓하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본교에서 배달되어진 점심식사의 메뉴는 꽁치조림과 취나물 무침, 미역국이다. 5-6학년 네명이 배식을 맡아 후배들에게 배식을 한다. 마치 군에서 취사병들이 부대원들에게 배식을 하듯 익숙한 솜씨로 밥과 반찬을 식판에 덜어준다. 아이들도 선배 형들이 떠주는 밥을 남김없이 먹는다. 반찬투정도 남기는 법도 없이 깨끗이 식판을 비운다. 그러고는 곧장 운동장으로 내닫는다.
운동장은 이내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넘쳐난다. 잠시 후 다시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교실로 우르르 모여들어 간다. 각 교실마다 한대씩 비치된 42인치 대형 프로젝션 텔레비전과 천장에 매달린 종은 어울리지 않지만 전자음의 벨소리보다는 분명 정서적 친근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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