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의 심각성



줄어드는 학생 수… 대학·산업계 고민

얼마 전 한양대가 공대 정원감축을 골자로 한 정원조정안을 내놨다. 이공계 정원 35명을 감축하고, 경영대 정원 30명을 늘린 게 골자다. 당초 한양대는 공대 정원 1141명의 10%에 해당하는 ‘100명 감축안’을 추진했으나, 공대 반발에 직면해 감축규모를 축소했다.

한양대 공과대학은 오랫동안 대학 ‘간판’의 위상을 확보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부가 공대 구조조정을 시도했던 이유는 이공계 학생 감소 때문이다. 입학자원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에 우수 학생을 골라내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 한양대 관계자는 “이공계 쪽의 입학자원이 줄고 있어 우수한 학생을 뽑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전했다.

※글 싣는 순서
<1>이공계 위기의 심각성
<2>이공계 기피 원인은
<3>이공계 위기극복 해결책은


■이공계 입학자원 감소...대학은 ‘고민’=이런 고민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일반계 고교 고3 학생의 문·이과 비율은 5.2대 4.8로 거의 균형을 이뤘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는 문·이과 비율이 6.2대 3.8로 문과 편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2010학년도 수능시험에선 과학탐구를 선택한 이과생이 22만명으로 전체의 30%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은 대학 학부·대학원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7년~2009년 국공립대 자퇴생 2만7492명 가운데 이공계 학생이 1만6899명(61.5%)을 차지했다. 특히 서울대의 경우 자퇴생 51명 중 96%가 이공계 학생이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서울대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권영근 연세대 생화학과장은 “올해 우리 학과 학부생의 대학원 진학률은 10~20% 정도”라며 “KAIST의 경우에도 지난해 생명공학부 학생들이 한 명도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아 실망감이 컸다는 얘길 들었다”고 전했다.

대학 학부교육에서 이공계 위기가 심화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의·치전원과 약대 입시를 꼽을 수 있다. 의치전원 입시기관인 PMS에 따르면 지난해 의치전원 합격자 1386명 가운데 생물학 전공자가 43.4%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공학계열 19%, 화학 13.1% 순으로 나타났다. 대학 출신별로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KAIST·이화여대 등 소위 명문대 이공계 학생이 합격자의 55%를 차지했다.

이공계 출신으로 의치전원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부분 우수한 성적을 갖고 있다. PMS가 2005부터 2007년까지 의치전원 합격자를 분석한 결과, 학부평균 학점이 4.05점(4.5 만점)이었다. 가톨릭대 의전원의 경우 올해 입학생 47명 중 절반 이상인 27명이 이공계 장학생 출신이다. 임승순 한양대 응용화공생명공학부 교수는 “우수한 학생들이 의치전원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 학생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공계는 의·치전원 대비 학과?=의치전원 입시 준비는 대부분 학부 재학 중 이뤄진다. 학부 2~3학년 때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공계 교수들의 고민이 생기는 대목이다.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요즘은 문과생들까지도 의치전원 입시 대열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며 “덕분에 물리학 수강생은 늘었지만, 이를 가르치는 입장에선 학원 강사가 된 느낌”이라고 씁쓸해 했다.

현재 대다수 의전원이 의대 복귀를 선언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의대·의전원 병행대학은 현 대학 1학년생이 전문대학원을 입학하는 2014학년까지 의전원을 유지해야 한다. 아울러 의치전원 완전전환 대학도 2016학년까진 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임승순 교수는 “의대 복귀가 당장 되는 것도 아니고, 의대체제로 복귀한다고 해도 우수한 이공계 학생은 의대로 다 빠진다. 이공계 학부에 입학해서도 편입을 통해 유출되는 학생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2+4년제 약대가 도입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나마 의전원은 학부 4년을 졸업한 뒤 의전원 입시를 치르지만, 약대는 일반학부 2년을 마친 뒤 곧바로 약대입문자격시험(PEET)을 통해 약대에 지원할 수 있다. 서울의 한 이공계 교수는 “이공계 학부생 가운데 신입생 때부터 약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며 “약대가 의전원보다 심각하게 이공계 학부과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올해 처음 시행된 PEET 시험에 1만 명의 응시자가 몰리면서 이런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의전원·약대 입시학원인 ‘프라임 MD’가 최근 PEET 지원자 성향을 조사한 결과, 화학과 출신이 2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생물계열(21%) △기타 자연계(20%) △공학계열(14%)이 그 뒤를 이었다. PEET 지원자 가운데 82%가 이공계 학부 출신인 셈이다.

■산업계는 연구인력 부족 ‘아우성’=이공계 기피현상은 산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연구개발(R&D)인력 부족이 대표적이다. 산업계에 따르면, 오는 2013년까지 정보기술(IT) 분야에선 석박사급 R&D 인력 1220명 부족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소프트웨어 석·박사 부족 인력은 9973명으로 1만명에 가깝다.

개별 산업체를 들여다보면 이런 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올해 1000여명의 R&D인력을 뽑을 계획인 현대자동차는 지금까지 600여명을 채웠을 뿐이다. 자동차업계 뿐 아니라 IT업계에서도 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3000여명의 R&D 인력 채용 계획을 가진 삼성전자의 인사담당자는 “우수 인재는 한정돼 있지만, 원하는 곳이 많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이 정도니 중소기업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특히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연구인력 부족은 곧 위기로 다가온다. 최근 LED나 바이오등 신성장산업에 대한 투자가 몰리면서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가 심해지고 있다. 한 LED업체는 5명에 불과한 R&D 인력 가운데 2명이 최근 대기업으로 이직해 신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또 지난 해 가을 출범한 LED 조명업체의 경우 창업 3개월여 만에 7명의 R&D인력이 대기업으로 빠져나가 기업경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의 한 공대교수는 “이공계 출신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며 “학계에선 미국과 같이 지속적인 연구를 해야만 하는 이공계 전공 교수에 대한 배려가, 기업에선 정신적·육체적으로 더 고생을 하는 연구 인력에 대한 배려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도 이공계 기피 ‘심각’
90년대 초·중반을 정점으로 학생 수 급감
R&D 인력 부족...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도 이공계 위기를 고민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이공계 학부생 수는 50만명. 1990년대 초반 79만명에 달하던 것에 비하면 29만명이나 감소했다.

1990년 초·중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이공계 학부생 감소는 산업계 연구인력 감소와 국가경쟁력 하락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게 가전시장 분야다. 2005년 까지만 해도 세계 TV시장 점유율은 일본(40%)이 한국(20%) 보다 두배 가까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2006년부터 역전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기업 점유율에서 삼성전자가 소니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고, 작년 3분기에는 국가 점유율에서도 한국(35%)이 일본(33%)을 밀어냈다.

가전시장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7년 5월 일본의 양대 항공사의 하나인 ‘전일본공수(ana)’의 국내선 컴퓨터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하네다 공항을 비롯해 일본 전역 51개 공항에서 승객들이 탑승 수속을 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를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인한 엔지니어 부족 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분석했다.

일본 교수들과 교류를 갖는 국내 교수들의 전언에서도 일본의 이공계 위기현상이 확인된다. 김성철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일본 교수들도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고민하고 있다”며 “IT분야의 인재가 가장 부족하며 그 다음이 기계·조선 분야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 결과가 소니·도시바·NEC 등의 경쟁력 위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 토요타 리콜사태의 근본원인도 이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청년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은 아버지 세대처럼 고된 작업과 연구를 꺼리고 있다. 이는 ‘이공계는 대접받지 못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낮은 보수가 주요 원인이다. 기술 혁신 속도가 너무 빨라 추세를 따라잡기 힘든 점도 이공계 기피 이유 중 하나다.

현재 이공계 기피현상이 한창 진행 중인 우리나라와 일본은 닮은 꼴이다.  우리 또한 이공계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위기는 곧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신하영·조용석 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