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

“계집애들 머리카락 팔아서 번 돈이 뭐가 그리 자랑스럽습니까?”

1965년 정부 산하 연구소장 리셉션 자리에서, 가발, 스웨터 등의 경공업제품 수출 실적을 은근히 자랑하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최형섭 박사의 날카로운 발언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팔 수 있어?”

되묻는 대통령을 향한 최형섭 박사의 대답은 기술이었다. 일본이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제품만 10억 달러 이상 수출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긴 역사에 비추어 찰나라 할 과학기술 중심의 시대가 이렇게 열리게 되었다.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이 소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적이 있었어?”하고 되물을 만큼 이공계 기피현상이라는 말 자체가 잊혀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공계 기피현상을 소리 높여 걱정하던 그 상황의 본질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세가 커져만 가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말하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역사상 이공계 기피현상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예외적으로 없었던 때가 있었다면, 가까이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과학입국 기술자립”의 시대였을 것이고 더 멀리는 한글, 측우기, 앙부일구, 혼천의 등의 세종대왕 시절일 것이다. 이 두 시대의 공통점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을 하였다는 것, 그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한 유능한 과학기술 정책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정책들이 경제적 번영과 민생안정을 누리는 초석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극복하는 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과학기술이 중시되던 시기를 살펴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최고 지도자와 과학기술 정책가들의 인식과 비전이 중요하다. 우리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과학기술정책의 수립과 일관성 있는 집행이다.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에 적힌 그대로 “일반 국민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기술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한 나라의 과학기술은 발전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은 이렇게 국민의 인식전환에서 과학기술정책 입안과 집행을 망라한 종합적인 것이어야 한다. 정부 산하 연구소들이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일반인에게 과학기술이 중요하게 인식될 리 없다. 이 부분에서 특히 과학기술계도 깊이 반성하여야 한다. 왜 제 2의 최형섭 박사가 나오지 않고 있는가?

이공계 기피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IMF 구제금융 시절에 이공계 인력들이 기업에서 대거 퇴직 당하면서부터이다.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었던 과학기술인들은 IMF 구제금융 사태를 몰고 온 직접 당사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피해를 과학기술인들이 입었다. 과학기술직의 직업으로서의 안정성이 매우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 기업들이 이공계 기피현상이 초래한 쓴 술잔을 들고 있다. 과학기술인력의 최대 수요자인 기업들이 반성하여야 할 부분이다.

그렇게 쉽게 해고당하는 이공계 인력을 양성한 대학들도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이공계 졸업생들은 인문계 졸업생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 반대로 인문계 졸업생들이 이공계 졸업생들의 업무를 수행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 많은 이공계 졸업생들이 기업과 정부에서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밑바탕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 대학교육이 기여했더라면, 과학기술인들이 천대받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 전체의 과학기술 우대 분위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은 청소년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이제 초, 중, 고등학교의 수학 및 과학기술 교육은 그 내용과 방법 모두 달라져야 한다. 수학은 어렵고 과학은 난해하며 기술 과목은 재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학교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과학기술에 내 인생을 걸겠다는 생각을 할 것인가? 이 부분 역시 과학기술계가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한 교육과정과 교재를 만든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과학기술에의 꿈을 키워가게 하는 일 역시 과학기술계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다.

다시 과학기술입국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전 과학기술계가 앞장서야 한다. 이는 과학기술을 위해서가 아니다. 과학기술인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 역사가 보여 주었듯이 국가번영과 인류공영의 터전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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