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개인 정보 보호 대책 마련 시급

어느 날 전혀 모르는 낯선 누군가가 나를 보고 묘한 웃음을 짓는다. 나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순간 왠지 모를 당혹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당혹감은 곧 불쾌감으로 변한다. 마치 그 사람이 나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디지털화를 추구하면서 캠퍼스 곳곳에는 자동화 또는 디지털 기기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대학들은 디지털화를 통해 ‘편의’와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캠퍼스에 디지털 기기들이 늘어날수록 나를 훔쳐보는 눈길도 하나둘 늘고 있다. 내 정보가 나도 모르게 새고 있는 것이다. 현재 개인 정보 유출 우려가 가장 큰 것은 바로 무인 자동 증명서 발급기. 상당수 대학들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나 학번만 입력하면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어 정보 유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록 증명서에 기록된 정보들이 개인 신상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수준은 아닐지라도 내 정보를 누군가가 훔쳐본다는 것은 불쾌한 일임에 분명하다. 이에 따라 서울대와 충남대 등에서는 무인 자동 증명서 발급기의 개인 정보 유출 위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대학들마다 설치돼 있는 인터넷 검색기는 자칫 방심하면 또 다른 몰래카메라가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학생들 사이에 ‘싸이월드’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싸이월드는 우선 개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개인 미니홈피에 접속하게 돼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접속을 끝낸 뒤에도 인터넷 주소창에 해당 개인 미니홈피의 주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나’를 훔쳐보게 된다. 실례로 대학생 이 모 군(경영2)은 학내에 설치돼 있는 인터넷 검색기에서 무심코 싸이월드의 개인 홈피에 접속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 군이 잠시 자리를 비운 뒤 다시 인터넷 검색기로 돌아오자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미니홈피가 화면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던 것. 평소 미니홈피 방문객 늘리기에 혈안을 올리고 있는 이 군이지만 이런 경험은 다소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군은 즉시 열어본 홈페이지 목록을 지운 뒤 자리를 떠났다. 우리 속담에 잘 쓰면 ‘약’. 잘 못 쓰면 ‘독’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들이 설치하고 있는 각종 자동화 또는 디지털 기기도 이와 같다. 분명 이 기기들은 설치자나 사용자 모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비용과 시간을 절감시켜준다. 하지만 무턱대고 편리함만 추구했다가는 개인 정보 유출과 같은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다. 아직까지 심각한 수준의 개인 정보 유출 피해 사례가 대학가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언제든지 대형 사고는 생길 수 있다. 개인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무엇보다 사용자가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디지털화를 추구하고 있는 대학들이 단지 편의만 추구하면서 개인 정보 인권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나 학번 입력만으로 간단히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발급기 대신 지문인식 발급기를 설치하고 개인 정보 유출 발각 시 처벌을 강화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등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디지털 기기들이 등장할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만큼 대학들은 개인 정보보호에 지금부터 힘써야 한다. 그래야지만 비로소 디지털 기기들은 ‘독’이 아닌 ‘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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