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섭 본지논설위원·광주보건대학 기획실장

취임 초부터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해 오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을 주는 발언을 했다. “전문대학과 특성화고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겐 별도의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전문대학은 산업기사, 특성화고는 기능사 등 국가기술 자격증을 주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개혁의 핵심 명제는 두말할 필요 없이 사교육 근절과 공교육 정상화다. 이 과정에서 직업교육 영역은 자칫 소외될 가능성이 컸으나 이번 장관의 발언으로 인해 직업교육 영역에까지 그 정책 스펙트럼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하다. 또한 공정사회와 친서민정책의 시각에서 볼 때에도 이 장관의 행보는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재학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대학과 특성화고의 학생들마저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기형적 상황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관의 발언 직후 교과부는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별도의 검증 시험이 필요하지 않도록 전문대학과 특성화고의 교육과정을 '산업수요 맞춤형'으로 개편할 것이라고 한다. 단계적으로 고용노동부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인증을 통과하는 전문대학과 특성화고 학과부터 자격증 시험을 면제할 방침이다.

만약 이러한 정책이 실현되면 전문대학과 특성화고에 대한 신뢰성이 증대되고 정규 교육과정을 정상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중·고등 단계의 직업교육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 당장 교과부의 정책이 현실화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대학 또는 특성화고 졸업만으로 자격증 취득을 허용한다면 자격증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입장이다. 원래 국가자격은 해당 업계에 종사하려는 자들이 최소한도로 갖춰야 할 이론적·실무적 능력을 검증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전문대학과 특성화고의 교육시스템은 그것을 결코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성화고는 대학진학을 위한 준비 장소가 됐고 전문대학은 일반대학과 차이 없는 교육과정으로 산업현장과 유리된 교육을 실시한다는 지적이 공감을 얻고 있다.

결국 이를 둘러싼 논란은 전문대학과 특성화고의 교육 자체가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의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고 있느냐 하는 ‘교육의 질’ 논쟁으로 귀결된다. 현재 정부에서는 국가기간 전략산업 직종 중 201개 직종에 대해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개발했다. NCS는 직업교육기관의 커리큘럼 및 프로그램, 각종 자격시험의 검정 방법의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특히 한창 추진 중인 자유무역협정(FTA) 중 서비스 교류 분야에서 국가 간 자격의 상호인정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NCS에 입각한 커리큘럼은 모든 직업교육기관에 필수사항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증 여부에 따른 자격증 수여 여부가 학과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결국 졸업과 동시에 자격증을 수여한다는 교과부의 입장은 사교육 의존율을 낮추려는 취지 이외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직업교육 정착’이라는 정책의도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장관 발언을 종합해 보면 직업교육기관에 대한 장밋빛 기대 이면에 엄청난 부담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문대와 특성화고의 선택방향은 명확해졌다. 산업인력 양성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커리큘럼이나 교수 학습 방법, 산업체와의 협력 면에서 총체적 개선을 해야 한다. 물론 정부의 지원 확대와 산업계의 교육지원 역량도 배가돼야 한다. 현장실무형 내지 현장밀착형 인재 양성은 교육현장에서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상호 밀접한 의사소통과 체질개선을 통해 직업교육기관은 직업교육기관대로 교과부는 교과부대로 ‘직업교육 영역에서의 사교육비 근절’과 ‘국제 통용성 있는 직업교육의 운영’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성과를 거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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