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취업위한 정류장' 인식 모두에게 불행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대규모 채용 시즌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이맘 때 즈음이면 기업 인사 담당자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대학에서 배출하는 학생 다수는 불량품”이라는 것이다. “라디오를 한 대 사도 불량품은 바꿀 수 있지만 사람 불량품은 바꾸지도 못하기에, 기업 차원의 비용 부담은 물론이요, 국가적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라는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그동안 기업의 요구에 대해 상대적으로 초연함과 의연함을 견지해 왔던 대학 입장에선, 깊은 반성과 철저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학은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 개발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는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요,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비 지출을 자랑하건만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은 매우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비난 또한 한 귀로 흘려선 안 될 것이다.

다만 대학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실질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솔직히 대학이 노동시장의 요구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대학 자체의 몸부림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 공부하느라 절대 시간이 부족하니 교수님들은 과제를 조금만 내 달라”는 부탁을 해 온다. 청년실업 시대 희생자로 부상한 학생들에게 '진짜 공부'는 취직시험에 필요한 공부이니 교수들이 내주는 과제가 반가울 리가 없다. 어디 그뿐이랴. 대부분의 기업에서 신입사원 모집 시 제출된 이력서를 대학별·전공별·성적순으로 1차 스크리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학생들은, 학력을 세탁하고 전공을 포장하며 성적을 최대한으로 올려 스펙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데 온갖 기지를 동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대학 교무행정에 등장한 장치가 바로 재수강 및 학점 포기제다. 고객(학생) 중심의 서비스를 표방하는 재수강 및 학점 포기제 운영 방식은 대학에 따라 다양하긴 하나, 일부 대학에선 무제한으로 재수강 및 학점 포기제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 제도가 학생들을 점점 '학점의 노예'로 만들어가고 있음은 물론이요, 대학교육의 기형적 운영 및 질 저하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탄탄한 전공 지식을 토대로 잠재적 역량을 연마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은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경쟁력 갖춘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상생(相生)의 전략이라면, 이제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방식 또한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일례로 지금과 같은 대규모 채용 방식이 유지되는 한 일류대학 학벌이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할 것이요, 스펙에 담긴 고비용 저효율의 거품 또한 결코 걷히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현장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하는 기업 분위기 탓에 경영학 및 경제학 전공자가 우대받는 한 기초학문의 고사(枯死) 현상이 더더욱 심화될 것이요, 전교생이 경영학 관련 과목 수강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상황 또한 반복될 것이다.

만일 기업이 성숙한 인성과 책임감, 문제해결 능력과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역량과 풍부한 경험 등을 갖춘 인재를 찾는다면 이들 면면을 풍부하게 다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다채로운 채용 방식을 꾸준히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성적은 행복순이 아니듯 실력순도 아님이 분명하지만 굳이 성적을 고려할 요량이면, 평균 평점 자체만을 주목하기보단 점수 따기 어려운 전공 심화과목이나 핵심 교양과목의 선택 비중을 고려하는 것도 한 방안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뚜렷하게 상승곡선을 그리는 응시자를 우대하는 것도 합리적이리란 생각이다.

오늘날 대학이 취업을 위한 정류장쯤으로 인식되거나 '불량품 생산지'라 불리고 있는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인재양성과 기업의 인재충원 사이에 유기적 소통 시스템을 구축해, 윈윈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모색해야만 할 것이다. 선진국의 지속적 성장동력 뒤에는 대학 경쟁력이 자리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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