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가 갈림길에 섰다. 그간 지역거점국립대의 대표 주자로 이름을 떨쳤으나 최근 들어 예전 명성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지난 9월 취임해 청사진을 다듬어온 함인석 경북대 총장도 이런 현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자성해야 한다”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는가 하면, 저평가된 부분에 대해선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경북대 구성원들에게 스며든 패배감을 벗겨내고 자긍심을 살려 신명나는 대학 발전을 이루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이를 위해 그는 취임 후 한 주에 세 차례씩 단과대학을 찾아 교수들과 얘기를 나눴다. 취임식 때 스스로 밝힌 ‘CLO(Chief Listening Officer)’형 총장이 될 것이란 다짐의 실천인 셈. 함 총장은 “경북대에 좋은 교수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나를 따르라 식이 아닌, 이들과 소통하는 리더가 되겠다”고 했다. 단 필요한 때는 구성원을 설득해 과감히 변화를 주도할 것이란 의지도 밝혔다. 그는 충분한 지원이 뒷받침되고 대학 업그레이드의 계기가 된다는 판단이 서면 법인화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 취임 후 100여 일이 지났다. 높은 지지를 받아 책임감이 클 것 같다.
“대학이란 조직은 일반 조직과는 좀 다르다. 리더가 한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이 척척 따라가는 방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한 분, 한 분을 설득해 뭘 도와줄지 물어보고 지원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선거에서 지지율이 높았던 이유는 그간 경북대가 많이 침체돼 ‘발로 뛰는 총장’으로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바란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려니 어깨가 무겁다.”

- 대학을 경영하는 입장에 서보니 어떤가. 평교수 때와 또 다를 텐데.
“그간 한 주에 3차례씩 단과대학을 찾아 교수들과 얘기를 나눴다. 경북대 교수들의 역량은 어느 대학에도 뒤지지 않는다. 표현하자면 ‘저평가 우량주’인 셈이다. 지역거점국립대 교수의 긍지가 많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문제를 찾고 있다. 과거에 국립대 교수란 타이틀은 상당한 명예였다. 교수로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신명났던 부분이 실종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자괴감을 떨쳐내고 긍지를 다시 찾는 일에 주력할 방침이다.”

- 경북대의 대외 평가가 예전만 못하다. 마련 중인 대책이 있다면.
“우선 부끄럽다. 자성하고 있다. 그동안 경북대가 다른 대학들에 비해 뒤처진 점도 분명 있다. 외국인 교수 비율, 영어강좌 비율, 기술이전료 수입 등의 평가지표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중앙집중화로 본다. 지역의 일자리가 많아야 우수 학생 유치가 가능한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지방대 지원이 약한 부분도 아쉽다. 일례로 서울대는 정원의 130% 가까운 교수들을 충원하고 있는 반면 경북대는 7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경북대는 학생 수는 서울대보다도 많은데 교수 숫자는 훨씬 적다. 경북대가 열심히 뛰는 것과 함께 지역에 대한 정부 차원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 서울대 법인화안 통과로 국립대 법인화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사실 경북대는 전임 총장 때부터 법인화를 추진해왔다. 서울대 법인화 안 통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서울대는 상당히 준비가 많이 됐다. 반대하는 교수·학생들도 있었지만 많은 구성원들이 찬성한 것으로 안다. 공간과 준비자금이 확보됐고, 교수 T.O도 충분하다. 반면 경북대는 그런 면에서 서울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만약 서울대와 비슷한 정도의 지원이 확보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방대의 한계를 넘어 성장할 조건과 환경이 될 경우 과감히 법인화를 추진하겠다. 대학 구성원 뿐 아니라 지역을 위해서도 그럴 필요가 있다. 세부적으로는 부산대·전남대 등과 상의, 연합해 함께 법인화를 추진하는 안도 생각할 수 있다.”

- 구성원들은 법인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지 않은가.
“법인화의 최대 이슈는 국고 지원, 신분 보장, 대학 자율성 확보다. 당연히 이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법인화를 추진할 수 없다. 특히 교수회 차원에서 반대 여론이 높아 이들을 끌어안을 명분이 없으면 어렵다. 그러나 환경이 변화하는데 우리는 무조건 변화를 거부하겠다고 하는 건 곤란하다. 정부가 몇몇 국립대를 선택해 서울대 수준으로 집중 지원해준다면 법인화는 지방대 업그레이드의 기회가 된다. 결국 환경에 적응하는 조직이 살아남는 것이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 구성원을 설득해 끌고 가는 게 리더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 지방대의 활로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약학대학 유치에 성공해 약대 정원은 받았는데 건물을 지을 재정이나 부지는 없다. 국립대가 발전기금이 왜 필요하냐고 묻지만 지방 국립대 현실이 이렇다. 정부 지원이 1/3 정도라 2/3는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국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도 어렵다. 약대 유치 희망하는 데가 많은데 부지와 재원까지 마련해줘야 하느냐는 논리다. 국립대는 영리사업도 할 수 없어 막막하다. 그래서 총장으로 취임하며 제2캠퍼스 부지 무상양도를 비롯해 발전기금 2000억 원 모금을 약속했다. 교수들도 가능하냐고 묻기에 앞서 주위 사람들에게 왜 경북대에 발전기금이 필요한지를 설득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 최근 대구가 의료·IT 특화를 내세웠는데, 전망은 어떤지.
“모든 조직의 발전 방향의 첫째 원칙은 특성화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앞서가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 에너지원자력학과를 만든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삼성전자 취업이 보장되는 모바일공학과 신설은 학생들이 가치를 먼저 알아볼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이 잘 되는지, 얼마나 좋은 자리인지 비교해보고 지원하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지역 전체적으로는 의료·IT 특성화에 바탕한 ‘메디 시티’를 표방하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성패가 관건인데 속내를 살펴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오송 같은 경우 10여 년 전부터 준비해 부지 금액이 현실화돼 있다. 반면 대구 지역은 부지 금액부터 너무 비싸다. 이런 부분이 먼저 해결돼야 지역과 지역 대학이 같이 발전하는 방안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에서 의과대학 복귀 방침을 밝혔는데.
“의대 교수라 당시 상황을 잘 안다. 의전원 전환 당시 교수들이 대부분 반대했다. 동문회가 없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결정적으로 지역 이공계 우수 인재가 안 들어올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돼 후유증이 컸다. 의대에 입학할 학생들이 대구 지역에선 영남대나 계명대로 몰렸다. 결국 6년만에 의대로 복귀하게 됐는데 우수 학생을 유치해 키우는 데 힘 쏟을 예정이다. 약대 문제도 남아있다. 단과대학을 운영하는데 25명 정원으로는 힘들다. 적어도 50명 수준으로 늘리고 부지와 시설비 지원금도 확보돼야 한다.”

- 결국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대학의 가장 큰 역할은 사실 연구보다는 교육이다. 안타까운 게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만 했지, 사람 만드는 교육은 부실했다는 점이다. 학생 인성 교육만 할 게 아니라 교수 채용이나 승진 심사에서도 인성을 평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좋은 학생을 뽑듯 좋은 교수를 뽑아 사람에 투자하는 교육을 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수들의 기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신경외과 의사로 살며 만여 명을 수술했다. 사람만 수술하는 게 아니라 경북대도 한 번 수술해보자는 의욕이 생긴다. 좋은 교수들이 많아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 비전 선포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경북대 교시가 진리·긍지·봉사다. 최고로 좋은 교시라 생각한다. 교수·학생·직원이 긍지를 갖고 사회에 환원하는 봉사의 길을 배워 갈고 닦자는 것이다. 비전 선포식은 이 같은 다짐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할 계획이다. 지역거점국립대로 서울대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프라이드를 갖고 구성원들과 함께 노력해나가겠다.”

■ 함인석 경북대 총장은…
함인석 경북대 총장은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경북대에서 의학 석사(외과학 전공) 학위를, 부산대에서 의학 박사(신경외과학 전공) 학위를 각각 받았다.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며 의과대학장, 의학전문대학원장, 보건대학원장, 수사과학대학원장 등을 거쳤다. 일본 동경대 객원조교수와 미국 피츠버그대 객원부교수, 웨이크포레스트대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대구경북신경외과학회장과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신경외과학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대담 = 이정환 편집국장, 사진 = 한명섭 기자, 정리 = 김봉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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