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근 본지 논설위원·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연일 계속되는 폭설과 한파 속에 새해 벽두부터 서민들의 마음에 근심과 시름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재앙수준의 구제역 파동과 전세대란으로 표현되는 주거불안과 서민물가의 폭등은 서민들의 삶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문제는 이 모두가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구제역 파동이 검역 예산과 인력은 축소시키면서 가축 수를 늘리는데 초점을 맞춘 축산정책의 산물이라면, 전세대란은 서민 중·소형 주택의 감소를 부를 수밖에 없는 무분별한 뉴타운 개발의 산물이고, 서민물가 폭등 또한 잘못된 거시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사태들이 단기 성과주의의 산물이란 점을 이 정권이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임기응변식 해결책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물가잡기 총력전을 한다며 물가불안의 주범인 경제운용방향에 대한 수정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을 방치한 채 임기응변식 해결책은 부작용만 키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가 물가기관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색출해 인사조치하겠다”하고, 이주호 교과부장관은 “대학 총장들에게 등록금 동결을 요청”하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새삼스레 “통화정책방향의 최우선 순위를 물가에 두겠다”며 금리 인상으로 화답했다. 대통령 자신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관료들의 충성경쟁이 대통령의 단기 성과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기획재정부가 물가관리 대책의 단골메뉴로 내놓는 주요 농산물의 계약재배 물량 확대라는 임기응변식의 수급조절책이 다름 아닌 지난해 배추파동의 주요 원인이었단 사실을 간과한다.

단기 성과주의는 더 큰 부작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전세대란과 물가폭등의 동시발생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 3년의 ‘거품(빚)으로 이룬 성장’과 임기응변식 대책의 부작용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 결과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한 가계 빚 부담과 중국의 긴축 기조 전환 등 세계경제의 둔화 상황에서 뒤로 미루었던 주택관련 대출 억제와 금리 인상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성장률 성과주의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3.6%~4.5%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정부가 5% 달성을 추진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부작용을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예산을 조기 집행하여 서민들의 삶과 괴리된 수치를 일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 체질은 갈수록 취약해질 것이고, 경제에 대한 신뢰 특히 해외투자자의 신뢰는 부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임기 말에 접어들수록 권력의 누수현상이 증대하며 공권력에 의존한 정책효과는 시들해지고, 환율은 불안정해지며 서민들의 삶은 위기로 내몰릴 것이다.

정부의 5% 성장은 민간소비가 지난해보다 높은 4.3% 증가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 가계저축률이 3% 내외로 하락한 상황에서 가계 빚의 부담 증가나 구조조정은 지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가 수출에 죽고 사는 경제가 된 이유도 가계소득의 둔화에 따른 가계저축률의 하락에서 비롯한다. 90년대 연평균 13%로 증가했던 가계소득은 2000년대 들어 절반에도 못 미치는 6%로 낮아진 반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중 4%에서 25%로 확대되었듯이 성장을 통해 기업에서 창출한 소득이 가계부문으로 환류되지 못하고 있다. 즉 외부환경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거시정책의 안정적 운영이 어렵게 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대통령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남의 탓, 외부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한 가계 빚 구조조정과 부동산 경기 사이에서, 그리고 물가안정과 경기위축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의 국정기조는 청와대 구중궁궐 안에서만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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