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와 역할분담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오세정 연구재단 신임 이사장은 재단의 독립성에 대해 묻자 이 같이 답했다. 초대 박찬모 이사장이 지난해 중도 사퇴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연구재단은 진보성향 민간 연구원이 인문한국(HK)지원사업 전문가 심사에서 1위를 하고도 최종심사에서 떨어지자 외압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때문에 오 이사장은 “교과부가 (연구과제) 심사 후 잘못은 지적할 수 있지만, 심사 과정과 평가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요구했다”며 “교과부도 그럴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현재 역할분담에 대해 정리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등재지 관리가 부실했던 점에 대해서는 “학술지 평가의 개선 방향을 내놓겠다”며 “우수 학술지를 골라 ‘코어 저널(Core Journal)’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연구지원 패러다임을 ‘질적 평가를 통한 지원’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점차 창의적 연구성과가 중시되는 지식기반사회에선 양보단 질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창의적 연구를 통한 신지식창출을 위해 기초·원천 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연구에 열정을 가진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최근 논란이 한창인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해선 “정치인들의 지나친 개입이 국가 과학기술사업의 본질을 훼손하고 효율성을 저해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린다. 연구재단 이사장에 지원한 계기가 있다면.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신(新)지식 창출과 인재양성이 필요하다. 한국연구재단은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20%인 약 3조원으로 전 학문분야를 지원하는 대표적 연구지원관리 기관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점차 창의적 연구 성과가 중시된다. 연구지원체계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연구지원에 대한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논문을 양적으로 평가했지만, 이제는 질적인 평가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됐다. 이사장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도 연구지원 패러다임을 바꿔보겠다는 포부 때문이다.”

- 취임사에서 기초연구사업의 확충을 천명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미국도 2007년 고위험·고수익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 투자를 10년 안에 2배로 증액하는 ‘미국 경쟁력 강화 법률’ 을 제정했다. 미래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2009년 6월, 3개 재단을 통합한 한국연구재단을 출범시킨 이유도 기초·원천 연구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부응해 재단에서도 올해부터 기초·원천 연구지원을 확대한다. 현재 25% 수준인 연구자들의 연구비 수혜율을 35% 이상으로 끌어올려 국가의 잠재성장력을 높이겠다.”

- 이사장께선 지속적으로 신진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강조해 왔다. 그 당위성을 설명한다면. 

“이공계의 경우 박사학위를 마친 직후인 30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고, 도전적인 연구를 수행할 의지도 가장 충만하다. 그러나 대다수 신진 연구자들이 연구지원 부족으로 소중한 시기를 허비하고 있다. 외국에서 활발히 연구하던 과학자들도 귀국하면 정착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없어 실험에 필요한 연구장비를 갖추는 데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연구재단이 국가과학자지원사업, 리더연구자지원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부족하다. 올해부터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공계 분야의 경우 연구장비비를 포함해 5년간 총 12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우수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을 신규 추진한다. 또 ‘우수박사후 연수사업’을 신설, 5년간 총 7억5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박사후 연구원에게 초기 일자리를 제공, 5년간 안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 재단 출범 이후 연구관리전문가(PM)제도를 시행해 왔지만, 정착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취임사에서도 PM제도의 정착과 선진화에 대해 밝혔는데.

“PM제도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운영하고 있는 미국식 제도다. 연구재단 출범과 동시에 도입, 각 학문분야 전문가들이 연구기획·과제선정·평가관리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학문분야별로 400명 정도의 전문가(PM)가 필요하지만, 한국식으로 맞춘다면 상근 전문가 21명에 자문교수(비상근 전문위원)를 많이 두는 방법이 있다. PM을 도와주는 ‘자문교수 풀’을 만들어 연구기획에서 평가관리까지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착시키겠다.”

- 연구재단은 인문한국(HK)지원사업에서 전문가 심사 1위를 한 진보성향의 민간 연구원을 최종 심사에서 탈락시켜 ‘외압의혹’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한 재발 방지책과 연구재단 독립성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연구재단은 교과부로부터 연구개발 사업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게 많다. 예산을 확보해 집행하는 교과부 입장에선 사업을 관리·감독하고 싶을 것이다. 어떤 때는 그것이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다. 얼마 전 교과부와 역할분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거기에서 과제 심사는 우리에게 맡겨달라는 요청을 했다. 교과부가 심사 후 잘못은 지적할 수 있지만, 심사 과정과 평가는 우리 몫으로 해달라는 요구다. 교과부도 그럴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현재 역할 분담에 대해 정리가 돼 가고 있다. 연구재단의 안정적 예산확보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 세계 최고 연구지원 관리기관인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같이 직접 예산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예산을 총액으로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 재단 고유사업비 비중도 높여 실질적으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토록 하겠다.”

- 지난해 국정감사 땐 재단의 △방만한 경영과 예산낭비 △부실한 연구비관리 △등재 학술지(후보지) 관리문제 등을 지적받은 바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복안이 있다면?

“조직이 효율적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현재 외부기관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그 결과를 토대로 조직을 개편하겠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성과연봉제를 전면 시행한다. 재단 등재지에 대해서도 질적인 컨트롤을 해야 한다. 이제는 등재지가 양적으로 확대돼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지난 1998년 56종이던 등재지가 현재는 1432종이나 된다. 등재후보지도 620종에 달한다. 우선 학술지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학술지 평가의 개선방안을 내놓겠다. 적정 등재지(후보지) 수도 제시하겠다. 또 등재지 중에서도 질적으로 우수한 학술지를 골라 ‘코어 저널(Core Journal)’로 키울 생각이다. 외국에선 SCI, SCOPUS 등을 통해 학술지의 질적 평가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연구재단에선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수년 전부터 ‘한국판 SCI’ 즉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를 개발해 왔다. 이는 논문의 피인용 횟수나 인용지수, 영향력지수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질적평가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양적 위주로 치우쳤던 논문 평가방식을 질적인 평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선정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과학벨트 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밝혀주신다면. 

“과학벨트사업은 건국 이래 최대의 기초연구사업이다. 1단계로 2012년까지 3조 5000억원이 투입돼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등을 건설하고, 첨단지식기반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인들은 과학벨트 사업 추진에 대부분 찬성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결정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만일 정치 논리에 의해 입지가 선정된다면 향후 과학벨트 건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과학기술계의 중론이다. 정치인들의 지나친 개입은 과학기술사업의 본질을 훼손하고 투자의 효율성을 저해한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최적의 입지가 아님에도 정치적 이유로 지식산업단지로 지정되거나 대규모 국책연구소가 설립된다면,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예산 낭비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지역으로 선정돼 추진되길 바라고 있다.”



 

 오세정 이사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회장, 한국과학재단 이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모두 수석 입학·졸업하고, 스탠퍼드대 재학 당시 미국과학재단(NSF) 장학생 9명을 제치고 논문자격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담 : 박성태 발행인
사진 : 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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