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본지 공동기획]대학경쟁력 교육에서 찾다(2) 경희대

교육역량강화사업은 그간 ‘연구’에 쏠렸던 대학의 관심을 ‘교육’으로 환원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경희대는 이런 목적에 부합하고 있다. 교육역량강화사업 시행 3년을 넘기면서 대학의 강의문화까지 바뀌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2009년 교육역량강화사업 최우수 사례로 선정된 ‘영예학생 프로그램(Pride and Honor Program)’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과부는 이 프로그램을 두고 “해당 대학이 목표로 하는 인재상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 전인교육 ‘영예학생’=경희대의 인재상은 ‘실천적 세계인’이다. 이 같은 인재는 전인적 교육을 통해서만 길러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외국어능력을 비롯해 세계시민의식·창의성·융합적 사고를 키우는 데 주력하는 이유다.
◀영예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명사특강을 듣고 있다.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에 따르면, 매년 5월과 6월 사이 영예학생 100명을 선발한다. 선발과정에선 외국어성적이나 학업성취도도 중요하지만, 해당 학생의 성장잠재력을 눈여겨 본다.

선발된 학생은 방학 기간인 7월 중순부터 ‘몰입형 기숙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기숙교육은 토론과 명사특강, 특별활동, 문화·예술·교양 교육 등으로 짜여 있다. 토론 프로그램에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저)’ 등을 교재로 선택한다. 지구촌의 기아 문제를 놓고 동료들과 토론하기도 하고, 글로벌 매너와 에티켓도 배운다. 연극을 통해 자신감과 표현력을 얻고, 미술·음악에 대한 소양도 갖추게 된다.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진 팀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단계다. 한 팀은 지도교수 1명과 학생 2~4명으로 구성된다. 팀별 해외봉사를 실천하거나 국내외 학술대회를 참관한다. 해외 연구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고 글로벌 인턴십도 권장된다. 평화·환경·인권 등 유엔이 지정한 글로벌 아젠다와 관련된 해외 유수기관을 탐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팀별로 프로젝트 선정 이유를 기록한 기획안을 발표하고, 심사를 거쳐 확정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학생 1인당 경비를 지원받는다. 프로젝트를 위해 떠나는 지역은 국내외를 막론한다. 다만 어디를 다녀오든 결과물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 석학을 인터뷰 해 왔다면 동영상을 제시해야 하고, 마지막엔 팀별 최종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팀별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상과 최우수상 등을 시상하고 영예학생 인증서를 수여한다. 최종적으로 영예학생 인증을 받는 학생은 100명 중 90%정도다. 경희대 교육역량강화사업 추진단 서경아 팀장은 이 프로그램을 가르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칭했다. “입시교육에 매몰돼 왔던 학생들에게 전인적 교육을 시키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란 설명이다.

1기 영예학생 인증을 받은 한 학생은 후기를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쌓게 됐다”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강의실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닌 강의실 밖에서 배울 수 있는 참교육이었다”고 밝혔다.

■강의문화를 바꾸는 ‘경희 OER’=교과부로부터 2010년 우수사례로 선정된 ‘경희 OER(Open Education Resources)’은 강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웹상에서 교수와 학생 간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고, 강의록과 수업노트 등을 공유하면서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 교수·학생이 포트폴리오를 올리는 웹 사이트.▶
                                         
교수 포트폴리오에 강의록과 강의동영상을 올리고 있는 노동일 법대 교수는 “내가 한 강의의 동영상을 보면서 여러 시사점을 느꼈다”며 “강의 중 말하는 억양, 톤, 용어, 그리고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등 다양한 면에서 수업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술회했다.

OER은 매학기 교수·학생들의 참여 신청을 받아 교수 100명, 학생 400명 정도가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업로드 한다. 교수는 강의록이나 강의계획서, 보충수업자료, 강의 동영상을 올리고, 학생들은 수업노트나 강의후기, 과제수행 결과물 등을 업로드 한다.

교수가 올린 보충자료가 때론 온라인상에서의 열띤 토론으로 이어진다. 노동일 교수는 “강의와 관련된 시사적인 내용을 올렸더니 뜨거운 토론장이 벌어지곤 했다”며 “논리력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토론식 수업이 효과적이지만, 모든 학생이 참여하기에는 제약이 있는 만큼 온라인 토론을 활성화하는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됐다”고 말했다.

정세형(법학 4) 학생도 “교수 포트폴리오에는 질문게시판, 자유게시판, 토론게시판 등이 있어 교수와 학생들이 수업내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어 배움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며 “다른 친구들의 과제물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알게 된 점도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OER를 통해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교류가 활발해진 강의는 102과목에 달한다. 교수 100명과 학생 405명이 참여, 경희대의 강의문화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OER 이용하는 건수도 점차 늘어 지난해 1학기 3만2030건에서 2학기 7만9580건으로 총 11만610건을 기록했다. 교과부는 2010년 사업평가에서 경희대 OER을 우수사례로 평가하며 “학생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기주도적 학습을 실현했다”고 평가했다.

■학부생 학술활동 지원 논문 실적 급증=학생 장학금 지원사업도 성과를 평가받는 대표적 사업이다. 이 사업은 ‘우수학술 장학제도’와 ‘펠로우 면학장학’으로 구분된다.
◀ 영예학생 실천프로젝트로 해외 대학을 찾은 학생들.
특히 ‘우수학술 장학제도’는 학부생들의 학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사업 시행 전·후를 비교해 보면 학부생 논문 편수 증가율이 무려 256%나 된다. 지난 2008년 총 131편이었던 논문이 사업시행 후인 2009년엔 335편으로 수직 상승했다.

논문의 질도 평가받을만 하다. 2009년 손영훈(환경응용화학 당시 4)씨와 임수현(한의학 1)씨가 쓴 논문은 각각 SCI·SCIE 저널에 등재됐다. 최유리(건축학 3)씨를 비롯해 20개팀 35명의 학생이 쓴 논문은 유명 논문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거나 해외 학술지에 게재되는 성과를 올렸다. 서경아 팀장은 “학부생 때부터 학술활동을 지원해 연구에 대한 베이스를 갖출 수 있도록 설계된 사업”며 “올해는 172개팀에 총 6억5000만원이 지원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50개팀에 5억원을 지원한 데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자 사업규모를 확대한 것이다.

이밖에도 경희대는 취업촉진·튜터링·국제협력(Global Collaborative)·몰입형기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9년 한 해 동안에만 취업촉진 프로그램을 통해 88명의 학생에게 해외 인턴십 기회를 제공했다.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통해선 총 5개국 21개 대학에 160명의 학생을 파견할 수 있었다.

서 팀장은 “국제협력 프로그램은 어학연수가 아닌 전공연수”라며 “해당 학문분야의 명문 해외대학을 방문, 현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세미나와 토론 등을 경험하고 오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역량강화사업 시행 이후 경희대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교육에 대한 고민’이다. 서 팀장은 “사업 시행 이후 수요자 중심 교육이 뭔지 고민하게 됐다”며 “학생의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교육이 뭔지 고민했고, 프로그램을 제공한 뒤 나타난 성과에서 가장 큰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영예학생’ 인증 받는 변수현 학생
“프로그램 마친 뒤 삶의 목적 다시 생각하게 돼”

“나는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변수현(경영 4)씨는 영예학생 프로그램을 마친 소감을 묻자 진로가 바뀌었다고 답했다.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아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려던 계획에 변화가 생겼다는 얘기다. 변씨는 “졸업하면 독일 사회적 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가 변 씨에게 있어선 인생의 변환점이다. 가치 기준이 바뀌었고 진로도 바뀌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영예학생 프로그램’이다. 이 달 말 영예학생 인증(수료)을 받는 그에게 이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봤다.

- 영예학생 선발과정은 어떤가?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 미래비전 등을 담은 지원서류를 내고 교수·학생 3대 3 면접을 치렀던 게 기억난다. 교수님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시킨 뒤 천안함 사건에 대해 물으셨다. 학생의 생각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 영예학생 선발 직후 기숙교육프로그램에 들어가던데.
“방학기간 동안 해야 하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계획했던 학원 학습 등을 포기해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는 없다. 기숙 프로그램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토론 수업에선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란 책을 교재로 섰는데, 기아 문제의 원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 충격적이었다. 또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게 창피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나를 깨뜨리고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팀별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어떤 것을 기획했나.
“우리 팀은 경영대와 법대생 각각 2명씩, 4명으로 구성됐다. 사회적 공헌이란 주제를 놓고 전공과 관련된 것을 찾다가 ‘사회적 은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이윤 추구만이 목적이 아닌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지원하는 은행이 있다.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회사에 대출을 해준다거나 서민과 저소득층에 대한 소액대출(microfinance)을 해주는 일 등을 한다.”

- 프로젝트 시행단계에선 어디를 다녀왔나.
“스위스·네덜란드·독일의 사회적 은행을 다녀왔다. 특히 독일 사회적 은행인 GLS Bank에서는 지역의 오르가닉(Organic) 카페를 지원하고 있었다. 이 카페는 화학제품이나 비료, 살충제 없이 경작된 유기농 커피를 주로 판매한다. 한 젊은 친구가 12명의 친구를 보증인으로 세워 사회적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카페를 열었다. 이처럼 사회적 은행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투자한다.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거나 친환경 주택을 짓는데도 지원한다. 처음에는 뜻이 맞는 10여명의 사람으로 시작해 지금은 수백명의 직원을 둔 은행으로 발전했다. 돈과 이익만을 쫓지 않기 때문에 금융위기 때도 안전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미래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고객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점차 사회적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독일의 GLS Bank는 2009년에 3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 기숙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끝내고 난 뒤 변화는.
“삶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다. ‘세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졸업하면, 독일 사회적 은행으로 인턴을 다녀올까 생각중이다. 프로젝트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인턴 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취업문제로 고민을 했고, 공부해서 공기업·대기업 같은 좋은 직장을 가질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영예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도 처음엔 시간 낭비가 아닌가하는 불안함도 가졌는데 오히려 지금은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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